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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재 이진주 May 08. 2024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

사람의 행복

화사한 햇살에 눈부신 봄날이다.

마당 앞에 하얗게 피었던 목련꽃이 다 떨어지고 금세 손바닥만 한 연두잎을 키워놓았습니다. 봄이 왔다고 들떠 있는데 어느새 벚꽃 잎 분홍바람에 날려 보내고 연초록 이파리가 커져 갑니다.

매화꽃을 따라 피던 진달래도 지고 산벚과 분홍빛의 철쭉을 피워 놓고 바람은 북쪽으로 내달립니다.

며칠 전 밤새 내리던 봄비는 나무들에게 무어라고 속삭이는 듯하더니 온통 초록빛을 뿌려 놓았습니다.

봄에는 꽃이 먼저 피어 눈길을 끌고 무성한 나뭇잎을 키워 그늘을 만듭니다.

아마도 금방 다가올 여름이 덥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겨우내 죽은 듯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무는 자기의 특성대로 다른 잎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계절을 맞이하지만 같은 듯 다르기 때문에 나는 가끔 바람의 색깔을 물어보게 됩니다.

올봄에 부는 바람은 무슨색이지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질문입니다.

꽃은 우연하게 피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노랑 바람이었을 겁니다. 뒤따라 흰 바람이 불어와 참고 견딘 세월을 보상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진 추위와 풍파에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벼텨온 나무와 나는 시절연인이 되어 그 견뎌온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 놓을 수 있었습니다.

준비하고 다져왔던 그 시절연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초라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빨간 명자나무꽃보다는 연분홍을 엷게 머금은 명자나무꽃은 나의 영혼을 담아놓은 듯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환상적인 봄날에 꽃의 맑음과 뚜렷한 윤곽은 우리네 인생사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멀리 두고 그리워하는 사이보다는 자주 만나고 마주 앉아서 아쉬움을 받쳐주어야 정을 나누어야 시들지 않고 향기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식물은 한자리에서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꽃을 피우고 숲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은 숙명적인 역마살이 있어서 대체로 한 곳에 머물지를 않습니다.

벌과 나비가 향기를 쫓아, 달콤한 꿀을 찾아서 자신의 공간을 넓혀가듯 인간도 걸음마가 시작되면서부터 미지의 땅을 밟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부부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고 살아가지만 모든 식물들은 새들에게나 벌나비에게 또는 바람에 의탁하여 종족을 번성해 나가는 조화와 신비로움을 보여 줍니다.

결국 사람도 꽃과 나무처럼 향기를 내어 놓고 맑음으로 인간사회에서 진실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 선한 영향력으로 넉넉한 세상을 펼쳐가게 됩니다.

삶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야 청정한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고 기근과 전염병을 죽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은 신의 저주를 받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부만큼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에 살면서도 채어지지 않은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내면에는 가난하고 정을 나누며 살던 불과 얼마 전보다 훨씬 빈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탐욕의 주머니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부모와 자식이 제각각의 삶을 지향하고 형제우애는 찾아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지구의 환경을 날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계절이 뒤죽박죽이 되고 꽃들이 순서 없이 피는가 하면 폭염과 극한의 한파가 이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점에 다가와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의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신과 냉소로 각종 이기주의의 팽배가 사회의 기본질서마저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진정성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온 시간들에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고 이웃과는 나눔의 미덕이 있었습니다. 한 끼를 걱정하던 가난이 사람 사이를 오히려 돈돈하게 해 주었고 고통의 세월을 견뎌올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품앗이가 있었고 피가 섞이지 않은 고모와 이모, 삼촌이 있었습니다. 키 낮은 돌담 너머로 삶의 향기가 넘나들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절제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는 부정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자만하지 않고 절제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없다면 세상살이의 곤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만과 사치한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인명의 살상과 파괴를 일삼는 오만한 자들이 오늘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자지구의 파괴 등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오만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간사회의 끔찍한 재앙을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혹독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답게 사는 인간의 가치는 형편없이 전락해 버렸고 점차 부패하고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행복할 때는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드러내놓고 좋아하지 마십시오. 불행은 우리를 피하여 가지 않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권력의 유무나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평안함이나 행복도, 불행이나 고난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줄 아는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극락도 아니고 또한 지옥도 아닙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며 지혜롭게 처신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세상입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도 잠시뿐이고 행복도 잠시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겸허히 받아들이며 객관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당황하거나 흔들리면 안 됩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견딜 힘과 지혜가 싹틀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입니다. 

집 근처에 채소밭을 가꾸고 나무도 심고 꽃을 가꾸고 살고 싶은 꿈을 꾸어 봅니다.

언젠가는 소박한 꿈을 꾸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태평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믿어 봅니다.

아마도 연초록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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