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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20. 2024

동치미를 담그며

월동준비

  따스한 햇살아래 텃밭에 심은 무를 뽑는다. 9월 초 땅을 파고 검은 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심었다. 자리 잡을 때 비가 좀 내려 싱싱하게 잘 자라주었다. 주말에는 무청을 따서 된장국도 끓여 먹고 잎사귀가 싱싱해 몇 차례 삼겹살을 싸서 먹고 무청김치도 한 번 담가먹었다. 뿌리가 얼마만큼 컸는지 알 수 없기에 하늘이 주는 대로 수확한다. 11월 중순 잘 자란 무를 뽑아 동치미를 담그기로 했다. 무는 땅이 얼기 전 수확해야 한다.

  

  이파리를 잡고 뽑아보니 동그란 무가 푸른빛을 띠고 뽑혀 나온다. 대야 가득 담아 수돗가에서 바로 세척을 시작한다. 시중에 파는 것보다 굵기는 작고 상품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직접 심고 가꾼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 물을 틀고 손으로 문질러주니 뽀얀 살갗이 매끄럽다. 잔뿌리도 깨끗이 다듬어 굵은소금에 도르르 구려 소독된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었다. 소금에 절인 무는 2~3일을 굴려가며 간이 배게 둬야 한다. 부재료는 마늘, 생강, 삭힌 고추, 대파, 갓을 다듬어 씻은 후에 항아리 위쪽에 넣고 산책길에 따온 대나무 잎사귀도 깨끗이 씻어서 자  덮어주었다. 이제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면 된다.


  엄마는 겨울이 되기 전 월동준비를 했다. 여덟 식구가 겨우내 먹을 양식을 준비하니 그 양이 얼마나 많았을까? 뒷밭에 심은 무를 뽑아 놓으면 아버지는 바지게 위에 가득 올려 집으로 날라주었다. 작대기를 들고 헛기침을 하며 몇 번을 옮겨야 했다. 싱건지를 담그기 위해서였다. 칼로 무청을 잘라 행랑채 그늘에 말리면 겨울 동안 시리기 무침, 고등어조림, 시래기된장국의 재료가 되었다. 다듬어진 무를 샘가에 갖다 놓으면 엄마는 지푸라기를 몇 번 접어 물에 넣어 무를 쓱쓱 씻어냈다. 뒤뜰에는 엄마의 장독대가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홍시를 넣을 항아리, 그중에 가장 큰 독은 동치미를 담그는 항아리였다.


  뒤뜰까지는 딸들이 날라다 놓으면 물기를 뺀 후 대야에 굵은소금을 넣고 데구루루 굴린 후 소독된 큰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았다. 항아리는 어른이 들어가도 남을 만큼 컸다. 들여다보고'아아아' 소리를 내면 울림이 있다. 여덟 식구가 먹을 겨울 식량이니 여간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다. 오일정도 위아래로 뒤집어주며 무에 소금 간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고 나서 윗 샘에서 물을 길어다 굵은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부었다. 붉은 갓, 대파, 배, 마늘, 양파 면자루에 가득 담아 맛있는 국물 우러나게 넣어주고 마지막 대나무잎사귀를 위에 덮고 숯과 마른 고추를 넣고 나면 뚜껑을 덮는다. 보름정도 지나면 뚜껑을 열고 꺼내보면 무는 싱싱하고 무청은 노릇하게 변했으면 잘 익은 것이다.


  싱건지는 겨울 동안 우리 집 밥상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코끝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 뒷곁에 있는 동치미 항아리를 열면 얼어있던 항아리 뚜껑에 손이 쩍쩍 달라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살얼음이 살짝 낀 겉잎을 걷어내고 나면 보얗게 익은 동치미무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양푼 가득 꺼내와 도마윙 놓고 반을 가른 다음 곱게 채를 썰어주고 간이 짜면 샘물을 조금 섞어주고 마지막에 참깨를 동동 띄워주었다.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그만이었다. 하얀 쌀밥에 동치미국물을 말아서 밥을 먹기도 했다. 겨울 긴 밤, 고구마를 한 솥쪄서 동치미국물과 함께 먹으면 허전함을 달래 누는 보약 같은 음식이었다.


  동치미를 담그며 그 시절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해본다. 같은 무로 만들어도 옛날 깊은 항아리에서 꺼낸 시원하고 알싸한 그 맛은 재현하기 어렵다. 난 엄마가 아니고 샘물도 다르니까. 어쩌면 동치미를 담근다는 것은 그 맛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열 서내기 담그는 것이지만 나름 정성을 다했다. 남편과 함께 항아리를 들어서 창고로 옮기고 뚜껑을 닫으며 동치미가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려본다. 과연 올해 동치미맛은 어떤 맛일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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