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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1. 2024

'예비 교사'라는 말

당신은 어떨 때 설레는가? 첫사랑을 떠올릴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혹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의 예고를 보았을 때?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설렌다. 처음 교육대학교에 입학해서 '예비 교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설렜다. 오랜 내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진 것이 체감되고, 이제는 진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예비 교사’, 교육대학교에 다니면 ‘학생’보다 더 많이 듣는 이름이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국어교육론 과목의 교수님께서는 우리 학생들을 수업 내내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신다. 몇 년 후, 모두 선생님이 될 사람들이기에 존중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또 다른 교수님께서는 미래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수업을 충실히 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예비 교사로 불러 주신다. 조금씩 다른 이유지만, 공통적인 점은 학생들 모두 교사가 될 거라는 것을 가정하신다는 거다.      

교대는 초등 교사 양성이 목적인 특수한 학교이다. ‘서울’이나 ‘세종’ 같은 시 단위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임용 경쟁률이 낮은 편이라, 열심히 노력하면 대부분 임용 시험에 붙는다. 작년 내가 아는 선배들도 모두 4학년 때부터 공부하여, 그해 임용 시험에 바로 붙었다. 즉, 교대에 입학하면 초등 교사가 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교대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모두 예비 교사가 된다.     


처음에는 ‘예비 교사’로 불리는 게 좋았다. 다른 학과의 친구와 달리 미래의 직업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 직업의 준비를 하는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진로를 아직 찾지 못한 친구와 달리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예비 교사’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졌다.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가 잘되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종 교육 봉사활동과 교생실습, 공모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매번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 실제, 교실이었다면 분명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반대로 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진짜 교사가 아닌, 예비 교사일 뿐이니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가끔 그 부족한 점들을 과연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적성의 문제는 아닐까?’ 내가 ‘교사’라는 직업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활발한 에너지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같이 밝은 에너지를 얻게 되어 좋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텐션을 맞춰주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이게 과연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점인가?     


그래서 잠시 교사가 아닌 다른 길을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외로웠고 어려웠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등 교사’라는 직업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사이에서 혼자 다른 길을 생각하고 실제로 그 길을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틀린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뒤처진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교사가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괴로웠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지만, 또 어느 날은 맞지 않는 일에 스트레스받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계속 괴로워하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의 또 다른 정체성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학생! 난 학생, 배우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경험에서 최대한 배우려 노력했다. 방향을 빠르게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일단 속도를 낮추고, 길가에 있는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배울 점들을 찾았다.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나열하기보다, 그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에 집중했다. 비록 삐그덕거려도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랬더니 전에 ‘부족한 점’으로만 느껴지던 것들이 ‘배워야 할 점’으로 다시 보였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교사가 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부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어떤 직업이든 1부터 10까지 다 잘 맞을 수는 없으니까.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잘 맞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난 ‘예비 교사’에서 ‘예비’보다 ‘교사라는 말에 더 무게를 실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교사가 되기에 부족한 점, 교사와 맞지 않는 점들만 눈에 보였고, 나 자신을 질책하며 깎아내렸다. 하지만 학생으로서의 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예비’와 ‘교사’의 균형을 맞추어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부족한 점을 발견해도, 조금은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아직 많이 서투른.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서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예비 교사이고,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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