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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물결 Apr 16. 2024

콩 심은데 콩나물 난다

콩나물 구하기 힘든 미국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 중 하나가 콩나물이다. 두부나 숙주나물은 가까운 마트에 가면 손쉽게 구하는데 콩나물을 사려면 마음먹고 한국 마트에 가야 한다. 집에서 차로 한시간이 좀 넘는 거리다보니 한국마트에 간 김에 콩나물은 꼭 사오는 편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콩나물시루를 꿀단지처럼 고이 모셔놓고 키우셨다. 밤이나 낮이나 물을 주며 정성을 다하셨는데 시골 밤의 적막을 깨는 좌르르~ 똑똑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밤낮의 규칙적 물 주기는 할머니 몸에 시계가 달려있나 생각될 정도였다. 


시루에 콩을 심어 콩나물을 키우는 일은 어린 나에게는 화분에 꽃을 키우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그득하게 채운 물을 머금고 자라면 노란 꽃이 필 것으로 기대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장면을 처음 목격했을 때는 내 예상과 달라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물을 붓는 족족 밑으로 빠져나가서 물을 머금지조차 못하니 저래가지고 콩나물이 자라려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콩나물이 어느새 쑥쑥 자라 있었다. 빼곡해진 콩나물은 노란 꽃다발 같기도 했다. 


코메디닷컴 


그렇게 자란 콩나물을 솎아먹기 시작하면 사나흘에 한번은 어김없이 밥상에 콩나물 김칫국이나 콩나물 무침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고 이어령 교수의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에 나오는 대목처럼 매일 정성을 다하는 물주기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과도 닮았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콩나물시루는 밑 빠진 독처럼 물 한 방울 고이는 법이 없습니다.  콩나물은 어느새 저렇게 자랐습니다. 물이 모두 흘러내린 줄 알았는데, 콩나물은 보이지 않는 사이에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물 한방울 남지 않고 모두 다 흘러버린 줄 알았는데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요. 보이지 않는 사이에 우리 아이가.

['천년을 만드는 엄마' 중에서]


콩이 발아해 콩나물이 되면 콩에는 없던 비타민C가 생성된다는데 콩나물 시루야말로 식구들의 먹거리이자 건강을 지켜주는 우리 집 보물단지나 다름 없었다. 


맘껏 물을 머금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쭉쭉 잘도 자란 콩나물. 콩나물은 햇빛을 일찍 받으면 설익은 나물처럼 비려지거나 콩이 초록으로 남는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 충분히 자라야 빛을 보고 그 쓰임새를 다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때로는 그 촘촘함에 숨 막힘을 견디고 물의 달콤함을 기다리다 지쳐 허기도 느끼고 나면 

그제야 온전히 콩나물로 존재한다. 


코메디닷컴


삶의 과정도 콩나물이 자라는 일 같다. 물을 주는 일에 정성을 쏟고 원하는 만큼 벅찬 만족으로 채워지지 않아도 스치는 물 한 방울의 소중함에 감사를 담아야 함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어둠 속을 걷는 일은 막막하고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다 보면 콩나물처럼 자라난 온전한 나를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밑빠진 시루에 정성으로 물을 붓는 일은 가치가 있으며 삶의 모든 순간들이 나를 위해 존재했음을 느끼는 날이 올 거라고 콩나물 한 줌을 무쳐내며 생각한다. 인생은 콩나물 시루에 노랑 꽃을 피우는 일이다. 


우리 아이도 콩나물 국이 시원하다는 말의 뜻을 언젠가 알게 될까.







 © Ahn Hong-be 

© Ahn Hong-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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