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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기다림 Jun 30. 2024

소외감 또는 외로움

  오늘 아침에는 예전 좋아했던 분의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몇 회독을 할 정도로 좋아한 책입니다. 한참 지나고 다시 읽어도 통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쓰기까지 내공이 쌓이는 시간을 견뎌낸 과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내용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무언가 모를 감정을 느낍니다. 예전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며 읽었던 책인데 이제는 조금은 결이 다른 느낌을 가집니다. 읽다가 멈추게 하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이게 맞나?’ 나도 모르게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낯설지는 않지만 워낙 좋아했던 작가의 책이라 마음의 파장이 큽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책이 내 안의 무언가와 갈등이 있나 봅니다. 한참 동안 읽고, 생각했던 내용과 부딪히는 부분이 생긴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책 이후로 제 생각은 조금씩 변했을 겁니다. 변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생각하며 예전의 저와는 다른 제가 되었나 봅니다. 예전에 느꼈던 책의 내용과 지금 느끼는 책의 내용 사이에 강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 강은 새로운 책, 글, 생각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 강은 더 넓어질 것입니다. 강의 너비만큼 인식의 차이가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 관점이 훌륭해졌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별했던 책과의 괴리감을 느끼면서 좋아했던 책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낍니다. 지금의 생각이 더 깊어졌다고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좋아했던 책을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종의 소외감을 자아냅니다. 새로운 것을 읽고 쓰며 생각한다는 것은 예전의 읽고, 쓰며, 생각한 것들과 교류하면서도 서로를 밀어내고 있나 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좋아하던 것들과 거리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읽고, 쓰며, 생각하는 과정이 계속될 것이고 이런 비슷한 감정은 반복될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의 일을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퇴임 후 할 일, 봉사와 기부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련한 자료를 공부하고 작은 기부활동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이 일로 채우고 싶습니다.      

  다른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진 후부터 직장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만나면 여전히 직장에 관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당연한 일인데 언젠가부터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늘 같은 이야기 같고 새로워 보이지 않음에 지루하기도 합니다. 관련한 이야기를 더 보태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한참을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생각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나 봅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낯설어지면서 외로운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제 머리와 가슴은 미래의 일로 가득한데 동료들은 예전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그들이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라 제가 바라보는 곳이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바라보는 곳이 다른 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30년을 동료들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세월의 교집합이 있기에 단번에 끊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삶이 묻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툭 떼어낼 수 있는 노릇도 아닙니다.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무게만큼 소외감과 외로움은 커집니다. 사람을 잃지 않으며 소외감과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두렵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아무리 마음공부를 하고 명상을 해도 일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감정입니다. 몇 번을 되뇌고 다짐을 하지만 한 번의 울컥함으로 봉인시켜 두었던 늑대가 튀어나오는 일을 막을 수는 없나 봅니다     


  뜨거운 감자처럼 화를 다룬다는 것이 말이 쉽지 실제 뜨거운 감자를 보면 덥석 물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는 언제나 술 취한 코끼리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중에 일체개고(一切皆苦) ‘이 세상은 온통 고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가끔 이 말이 떠 오릅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고통을 동반합니다. 번뇌의 문은 열리고 열반은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통감하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무한궤도가 움직이는 것 같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은 형상입니다.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10만 8천 리를 단숨에 날아가도 부처님 손바닥이었던 장면이 사람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분 좋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독서와 생각의 시간을 갖지만 기분 좋은 마음은 아주 쉽게 우리 곁을 떠나곤 합니다. 부처님의 염화미소는 변함이 없는데 우리 내 미소는 하루를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감정은 보잘것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키려고 애썼던 감정이 작은 파도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끼곤 합니다.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마는 감정과 돈독한 사이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감정이 다 빠져나가고 우두커니 남은 감정은 소외감과 외로움입니다.      

  읽었던 책함께했던 동료지키려는 감정에게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숙명일 수 있습니다. 숙명이라면 계속될 것이고 계속되면 소외감과 외로움은 언젠가 익숙함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계속된다면 배움이 부족한 탓일 것입니다소외감과 외로움에도 굳은살이 박일 것이고 굳은살은 다음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어제오늘 비가 옵니다. 이 비도 시간이 지나면 햇살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소외감과 외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즐거움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 줄 것입니다.     


  즐거운 감정이 소외감과 외로움에 밀려나도 다시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센치함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까지 잊으려 애를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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