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무언가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다. 종이접기를 한다면 종이를 까뒤집는 부분에서 곧잘 막혔고, 뜨개질을 한다면 끝마무리를 못하는 수준에서 늘 그치고 말았다. 언제나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힘들어 누군가가 길을 닦아두지 않으면 쉽게 걷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손재주를 타고난 나는 불행하게도 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장난감을 가장 좋아했다. 이를테면 점토나 레고 같은 것들 말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늘 별개인 법인지라, 아마 이때부터 진작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그걸 깨닫고 나서 가장 많이 만진 장난감은 바로 요리 놀이였다. 벨크로가 붙은 채소를 자르고 접시에 담아 완성된 요리를 상상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던 창조의 전부였으니까.
직접 내 손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일정 구간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게임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쿠킹 마마의 지시에 따르는 단순한 조작만으로 나는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도 부럽지 않을 만한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쿠킹 마마’는 제목 그대로 요리하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게임이다. 닌텐도 게임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게임. 플레이어는 요리를 잘하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요리를 만드는 자식이다. 썰기, 다지기, 볶기, 끓이기, 요리를 플레이팅하는 것까지, 요리를 진행하는 사소한 과정들이 전부 미니게임 형식으로 진행되어 실제로 요리하는 것만 같은 경험을 주어 좋아했다.
하루는 게임을 하다가 ‘쿠킹 마마’ 속 요리를 직접 만들고 싶어졌다. 나는 어린 마음에 쿠키를 만들고 싶다며 어머니를 졸랐고, 어머니는 별수 없다는 듯 마트에 가서 간편 쿠키 믹스를 사 오셨다. 각종 재료를 섞어 반죽하는 것부터, 쿠키 모양 틀로 모양을 내 오븐 트레이에 옮기는 것까지. 게임에서만 보던 광경이 현실에 펼쳐지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에서 쿠킹 마마가 자식인 플레이어를 돕듯이, 어머니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우셨다. 내가 스스로 쿠키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그때 만든 쿠키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함께 쿠키를 만들었다는 추억만은 아직도 선연하다.
내 어머니는 쿠킹 마마 속 어머니처럼 언제나 몇 걸음 앞선 곳에서 나를 인도해 주셨다. 구태여 요리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구구단을 외우기 어렵다며 축 처져 있는 나를 붙잡고 끈기 있게 구구단을 가르치셨고, 훌라후프 수행평가를 앞두고 한 바퀴도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하는 나와 해가 질 때까지 훌라후프를 돌려주시고는 했다. 그때 어머니가 내 앞을 광이 날 때까지 닦아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나는 구구단은 몰라도 훌라후프만큼은 잘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났을 수도 있다. 내 인생은 분명 나의 것이지만, 그 기반에는 분명 어머니가 계셨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언제든 든든한 지지대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아마 어머니는 삶의 가치 중 가장 뜻깊은 것을 내게 전달해 주려고 하신 게 분명했다.
어느샌가 나는 어른이 되어 몇 걸음 앞선 곳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기보다는, 몇 걸음 뒤처진 곳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날이 더 많아졌다. 세상은 여전히 어렵기만 해 시작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 삶의 기저에 어머니가 남겨 주신 따스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불변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니 서투른 솜씨일지라도 계속 만들어가려고 한다. 나만의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