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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Aug 07. 2024

빵-머리에 빵-

탕탕 후루후루루루-


 매우 비싸며 스마트한 나의 핸드폰이 이제 24시간 유튜브 재생기계로 전락할 즈음, 그리고 더는 긴 영상을 볼 인내심마저 바닥나 쇼츠의 세계를 탐험할 때, 모두가 짜고 친 듯 모든 노래가 탕후루 노래로 가득 찼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노래가 있었지만, 쇼츠의 재생 시간만큼 빨리 잊혔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가장 좋은 능력인 망각이 전자 세뇌에서도 버텨냈다! 

 ADHD이라 진단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세상은 잘 파악하긴 어렵지만, 모든 사람들이 탕탕 후루후루 이러고 다니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탕후루를 부른 친구를 싫어한다는 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냥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요즘 인터넷을 켜면 정말 많은 말들이 있다. 어디서는 미사일이 날아갔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연예인의 바뀐 네일아트가 기사가 된다. 알고 싶지는 않지만, 계속 보인다. 누구는 싫다고 저격을 하고, 누구는 불편하다고 말하며 누구는 감동하고 누구는 누구를 혐오하며 누구는 과학과 예술을 말하며 또 거기에 누구는 진리의 가치에 말하다가 누구는 그 가치로 누구를 다시 비난하며 다시 그 누구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누구들과 누구들이 싸우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이고 그래서 그런갑다, 하지만 사실 그 다른 누군가 또한 누군가들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또 어디에서는 그 누구들이 서로 칭찬을 하며 서로들끼리 토닥거리며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한 병사처럼 다시 누군가와 전투를 하기 위해 나가기도 하고 또 서로들끼리 안식을 찾아 떠난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정말 많은 말이 있는 것 같다. 항상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는 말하고 있다.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데, 미묘하게 피곤한 점을 느꼈다. 옛날과는 다르게 듣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유튜브 속 세상에선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듣는 사람은 영상 밖의 나였다. 아하 그래서 미친 듯이 피곤해지고 시끄러워지는구나, 그러면 유튜브를 꺼야겠다. 

조용하다. 

 창문 밖,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대화를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조용하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해야 하는가. 


 그러다 댓글 창을 열었다. 세상에나.

 나는 나의 알고리즘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뿔이 나있나. 어디선가 들었다, 인터넷으로 사회와 세상을 배우지 말라고 현실과는 다르다고. 예전에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과 또 긍정적인 것들과 또 사실은 자극적인 것만 끊임없이 노출되기에 일부러 자극적으로 한다고. 그래서 대부분 허영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유튜브 쇼츠의 시대가 오고, 이제 너무나 많은 양의 컨텐츠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지금은 그 말이 더욱 무섭다. 수많은 악의와 혐오가 내 알고리즘에 침투되었을 때,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그 사소한 악의들이 락 콘서트 마냥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오 한 여름의 매미 같은 존재들이여. 정말 많은 것이 정보의 교류를 빙자한 말하기 대회인 것을 깨달았을 때, 또 신기한 점은 그 말하기 대회를 하는데, 돈이 오간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후원이라 하고 누군가는 의도를 숨기고 선의를 가장하고, 누군가는 불쌍한 마음에 의한 공감을 표시한다. 세상에 이제 우리는 별풍선이라 부르지도 않는 세상에 왔다. 그러면서 얻는 것은 그들의 끝없는 '말'이다. 물론 어떤 행위 예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본 것은 그랬다. 내 시야가 좁다면야 예전 같으면 내 배움의 부족함에 부끄러웠겠지만 이젠 당당히 알고리즘 탓을 할 거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느낀 점이 그렇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다. 나 또한 그렇다. 자주는 아니지만, 강렬히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왜 그런가 하니 일단, 사회에서 면대면으로 누군가와 침을 튀기면서 말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당장 옆 방에 있는 가족조차 그럴진대,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서로의 위치를 이해와 양해하며 심정은 상하지 않게 토론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엔 난이도가 너무 높다. 그냥 웃으면서 그렇군요 한 번이면 끝날 일들이니까.  하지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정말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두를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나로서 활발히 있기 힘든 사회에서 보다야 30초짜리 동영상으로 혹은 30초짜리 동영상에 한 줄의 댓글을, 어쩌면 이렇게 흰 페이지에 타닥타닥 타이핑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더 나 같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한 줄조차 말하기 귀찮고 들킬까 봐 두렵다면, 그래 내 알고리즘을 내 생각의 대변인들로  채워보자. 그 모든 것이 나의 분신이 되는 것 현실과 인터넷이 뒤섞이는 사회 같다. 인터넷과 현실의 괴리를 아십니까? 세상 시골 사람 같던 순박한 그 사람이 사실은 가장 왈가닥과 사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같은 충격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니기에 (요즘은 어떤 말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자격이 필요한 듯 보인다.)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만, 무슨 사회 무슨 사회 무슨 세대라고 말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당 시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당 시대 사람이 내릴 수 있을까. (역사학자라면 몰라도? 아니 역사학자라 해도 그럴 수 있을까?) 그냥 나의 체감을 말하는 것으로는, 그냥 '청자'가 없는 사회 같다. 대화가 없는 것까진 아닌 거 같다. 왜냐면 네 살배기 애들조차 웅얼거리면서 말하려고 하니까! 대화란 결국 내가 동시에 화자이며 청자여야 하는 것일 텐데 흐음- 글쎄 들어줄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으휴 대화가 고픈 인간들이란!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 같다. 

 "아니! 난 대화하기 싫어서 그냥 듣고만 싶어서 유튜브 켜놓는 건데?"


이것 봐, 나한테 '대화'를 걸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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