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한 발
입추가 지나도 한낮은 여전히 뜨겁지만 밤공기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낀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라테스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후 8시에 시작해서 한 시간 정도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9시쯤이라 어둑어둑하다. 8월 초만 하더라도 걷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입추인 8월 중순을 지나면서부터는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살짝 경사진 아파트 단지 내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노부부가 내려온다. 얼핏 손을 잡고 내려오는 것이 보여서 참 다정하시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저 나이에 남편과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방이 어두워서 손을 잡은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는데 내 옆을 스치는 찰나, 남편은 앞을 보고 걷고 있고, 잡은 손에 연결된 부인은 뒤를 보고 걷고 있었다. 완전만 경사이기는 하지만 나이 드신 분이 거꾸로 걸어서 내려가기에는 부담스러울만하다. 남편은 몸을 뒤쪽으로 기울이며 거꾸로 걷는 아내의 중심 기둥이 되어 주고 있었다.
"천천히"
라고 말하시는 남편의 온화하고 낮은 음성이 세상 달콤하게 들린다. 그들의 가는 뒷모습을 마저 보고 싶었지만 내가 뒤를 돌아보면 거꾸로 걷는 아내분과 눈이 마주칠 테니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