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섬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주워온 지식들로 길고 긴 논리를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목소리들이, 무거운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글과 사색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 정성스러운 종이 위에 말없는 장인이 깎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던가? (옮긴이, 김화영의 '글의 침묵' 15쪽)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기도 전에 옮긴이의 글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2년 정도 매일 아침 30분 정도 아무것이나 쓰고 있던 일들이 한순간 창피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브런치에 가끔 글을 올리면 10명 내외로 라이킷을 해준다. 옮긴이가 말한 '아무나'가 '나'인 것 같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을 읽으며, 작가는 엉덩이 힘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앉아 아무거나 쓰고 있다. 작가가 되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앉아서 조용히 쓰고 있으면 나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고, 하루의 시작이 안정되고 심지어는 위로받게 된다. 그런데 아무나 글을 쓰는 이 현실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글을 보면서 혼란스럽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로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인구는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지만 책을 출판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등단한 작가만이 아니고 내 주변의 이웃들도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책들을 쉽게 출판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썩지 않는 비닐로 표지를 씌운 가벼운 책들을 쉽사리 쓰고 쉽사리 빨리 읽고 쉽사리 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 목소리가 높은 주장, 무겁고 난해한 증명, 재치 있는 경구, 엄숙한 교훈은 많으나 <아름다운 글>은 드물다. (옮긴이, 김화영의 '글의 침묵' 16쪽)
김화영의 '글의 침묵'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감정을 책의 서두에 적었다. 아름다운 글이 사라져 가는 지금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 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번역된 글뿐만 아니라 그 말들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 하면서 고민한다.
나는 글을 쓸 때 고민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가.
한 문장을 쓰더라도 정성을 다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는 답은 자신할 수 있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