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파편을 줍다

<사랑은 길고양이 같아서> 30화

by 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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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거기에는 이야기의 끝이 아닌,

흩어진 조각들만이 있다.

찬란했던 순간의 부스러기, 미처 닿지 못한 말들,

그 파편들을 주우며 비로소 사랑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항상 완전한 형태로 남지 않는다.

때로는 흐릿한 풍경처럼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때로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가슴을 베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그 조각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사랑은 그렇게 흩어진 채, 우리 안에 고요히 남아 있다. 잊었다고 믿던 순간들이 어느 날 불쑥 떠올라 마음을 울리는 것처럼, 사랑의 파편은 때로 기억보다 더 깊은 자리에 존재한다.


영화 <접속> 속 동현과 수현의 인연은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시작된다.

인터넷이라는 낯선 매개 안에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삶에 스며들고, 익명의 이름들 너머에서 감정을 나눈다. 마침내 마주하게 되지만, 그 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끝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나눈 감정의 결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닿았고, 그 감정은 파편처럼 남아 그들의 삶을 물들인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이다.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


김훈의 『언니의 폐경』에서도 사랑은 거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작고 섬세한 기억으로 남는다.

우산을 함께 썼던 날의 체온, 젖은 바지 끝자락의 감촉, 빗소리에 섞인 침묵—그 무엇 하나 극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주인공에게는 그것이 사랑의 전부였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진짜 사랑은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함께 걷던 골목의 냄새, 건넨 커피 한 잔, 혹은 무심한 손길 하나. 파편처럼 작고, 조용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들.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연홍은 실종된 딸을 찾는 여정 속에서 남편의 배신과 마주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혼돈 속에서, 그녀는 관계의 진실과 마주하며 아팠던 사랑의 흔적을 되짚는다. 불완전하고 복잡했던 감정들, 그 안에서 여전히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잔혹하지만 진실한 사실이다. 어떤 사랑은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는다. 때로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오래된 애착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랑이었기에, 우리는 그 파편들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사랑에 대한 통념을 뒤흔든다.

사랑은 반드시 독점적인 감정이어야 하는가? 덕훈은 아내 인아가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의 내면에 남는 건 혼란과 질투, 그리고 파괴된 신념의 조각이다. 그에게 사랑의 파편은 고통으로 남지만, 그 아픔 역시 사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기대했던 것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흔들린다. 그 균열 속에서 생겨난 파편들은 쉽게 치유되지 않지만,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다.


사랑은 마치 유리병 속의 조명처럼, 깨지고 흩어졌을 때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완전하지 않기에 더 인간적이고, 다 닿지 않았기에 더 절실하다. 흩어진 조각을 손에 쥘 때 우리는 그 모양을 다시 떠올리고, 그 조각을 통해 잃어버린 감정을 되짚는다. 때로는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미 부서진 마음 위에서도 우리는 다시 사랑을 꿈꾼다.


사랑의 파편을 줍는다는 건,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어느 구석에 자리한 감정을 다시 만나는 일이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팠던 기억조차도 결국 사랑의 증거가 된다. 그러니 그 조각들을 외면하지 말자. 그것들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말해주는 흔적이다.


언젠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조각들을 주워 하나씩 마음에 담는다.

아프지만 따뜻했던 그날들, 불완전했지만 진심이었던 순간들. 그리고 그 조각들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은 결코 하나의 완전한 형태로 남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파편으로 흩어져, 오히려 더 깊이 우리를 흔들고, 또 안아준다.


사랑은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그 파편들 사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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