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아내의 시점
나는 지금, 한때 누구보다 듬직했던 남편을 환자로 두고 산다.
우리는 결혼 후 거의 40년 가까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유흥업소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남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직접 배달을 맡았다. 휴일이란 말은 남편의 사전에 없었다. 가까운 지역에 꽃놀이를 갈 때도 오후 4시 전에는 꼭 돌아와서 가게 문을 열어야 했고, 해외여행을 떠날 때조차도 미리 날짜를 맞춰 전날 밤늦도록 물건을 다 챙겨 나른 뒤에야 비로소 짐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런 삶이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서민의 삶이 대체로 그렇듯, 늘 빠듯하고 여유 없는 나날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버텨냈다. 물론 남편의 낙천적인 성격도 한몫을 했다.
몇 년 전, 30년 넘게 살았던 주택에서 이웃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 무렵도 남편은 큰 수술을 한번 받았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자잘한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 들어 넘기는 재주도 있는 사람이다. 이사한 아파트에서 운동도 하며 아파트 주민들과도 어울리며 재미나게 살 무렵 정기검진 때 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4기라고 하였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암에 걸렸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나마 다니던 병원이라서 치료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방에서 서울병원까지 오르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과일가게도 그날 바로 폐업 신고를 했다. 이 나이까지 일을 너무 했나 싶어서. 암이란 진단을 받으니까 앞뒤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마산에서 수원까지 전셋집을 얻어 이사를 했다. 병원 근처 낯선 동네로 이사 온 것도, 하루의 리듬을 치료 일정에 맞추어 사는 것도, 모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암이라는 이름은 삶의 질서를 거칠게 흔들어 놓았고, 나의 생활을 송두리째 가져갔다.
물론 남편의 생활도 송두리째 없어졌다. 우리는 과연 이 고난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냥 현실에 직면할 뿐이다.
그런데 남편은 평범한 환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병원 근처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생활을 한다. 처음에는 마산집의 그리움에 시간 날 때마다 마산 한 번 갔다 오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사람이 요양병원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동네 공터에서 매일 오후를 보낸다. 항암으로 몸이 녹초가 되어도 오후 시간은 꼭 동네에 사귄 친구들을 보러 간다.
내가 남편의 이런 이야기를 전화로 친구들한테 하면 친구들은 암 환자의 생활이란 것을 이해 못 하겠지만 남편의 생활 모습에 한편으로는 다행히 다면서 위로를 한다.
나도 너무 아파서 축 쳐져 있으면 그 또한 무슨 마음으로 보겠는가.
나는 이 기록을 통해 간호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 속에서도 낙천적인 남편의 암 환자 생활을 담고 싶다. 환자를 돌보며 드러나는 내 인내와 한계, 그리고 그 너머에서 발견한 작은 기쁨과 성찰. 병과 싸우는 나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부부이고,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암 환자 아내의 시점"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다독이고,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법이기도 하다. 암 환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간호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을 다독이는 과정이며,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여정이다. 병으로 인해 무너지는 것만 있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 부부임을 확인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는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힘겹고 버거울 때도 있지만, 작은 기쁨 하나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통해 고통만이 아닌 성찰과 희망을 담아두고 싶다.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시간이 단순히 아픔의 기록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던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