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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Mar 26. 2024

Round 1 돌이킬 수 없는 강

직장 내 괴롭힘, 당하거나 맞서거나(2)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애써봤지만 결국 나에게 새로운 직장 내 괴롭힘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저들에게 선택받은 것일까. 내 머리 위를 뒤덮는 거대한 어둠 속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당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애석하게도 나는 이번 직장 내 괴롭힘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저들도 처음이 아니다. 내가 속했던 그 팀은 알고 보니 (내가 겪기) 이전에도 다른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있었다. 사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우리 팀을 더러는 회전문 더러는 무덤이라고 부른다는 걸 후에 알았다. 이것은 곧 프로들의 싸움이라는 얘기다. 당하고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러고 보니 어딘가 상대방(C)의 눈빛과 말투가 낯설지 않았었다.



*나의 첫 직장 내 괴롭힘


첫 번째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을 때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몰랐다. 같은 직급이었지만 10살가량 차이가 났던 나는 동료들과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어느 순간 바뀐 공기와 직장인의 심리(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루는 상대방 A와 단둘이 분리된 공간에 있을 때, 벽에 세워져 몰아붙임을 당했다. A는 CCTV 아래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모욕적인 말을 부었다. 체격 차이도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마찰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A가 엄연히 선을 넘었으니 이제 모든 상황은 종결되고 그가 책임을 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A는 내가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에 그런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사과하고 전배발령이 났다. A의 애착 인형(괴롭힘 대상자)이 떠난 지 2달이 채 안 되어 이번에는 내가 떠나게 된 것이다. A는 일대일로 다른 직원들이 없을 때마다 늘 ‘우발적’이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다들 그저 내가 조용히 사라지길, 이 일이 인사팀까지 들어가서 커지길 원하지 않을 뿐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다른 직원들이 서로 주고받는 시선들은 놀랍지 않았다. A의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직원들과도 서먹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때 나를 간간이 나를 챙겨주던 다른 직원 B가 있었다. B에게 이런저런 상황들을 두고 얘기라도 해볼 참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충격받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상황의 주축이 B였다는 것이다. 나는 동시에 너무 많은 감정이 몰아쳐서 혼란스러웠다. 화가 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보던 반전 상황을 실제로 겪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냥 모든 것으로부터 다 벗어나고 싶었다. 멀어지면, 더 이상 마주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서 잊혀지고 괜찮아지겠지.


이후에 나는 번아웃과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들로 심리상담을 잠깐 다녔는데, 그제서야 내가 정서적으로 많이 다치고 아픈 상태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 어리고 서툰 당시의 나로서는 나 자신을 포함해 A와 B, 그 외의 사람들도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 기억으로부터 쉽게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전문가들의 행동 심리 책을 보며 오답 노트를 정리하듯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 한 땀 한 땀 마취 없이 스스로 상처를 봉합하는 나날을 보내서야 ‘저 사람은 -을 바탕으로 그럴 수 있다’는 약간의 통찰력을 얻었다.



*목격자, 있는데 없어요


첫 번째의 경험이 충분히 따끔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꿈꿨다. 절대 똑같이 반복하지 않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했다. 공기가 달라졌을 때부터 팀장에게 미리 면담하였고 팀장도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라 거의 확신했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내가 또 사람을 너무 믿었던 것이다. 아니 믿고 싶었겠지. 팀장과의 면담 내용은 그대로 상대방 C에게 공유되었다. 물론 나의 동의 따윈 구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직장에서의 중요한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내 머릿속과 입 밖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내 동의와 비밀 유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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