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당하거나 맞서거나(3)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발단
내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은 한마디로 ‘공개적 모욕’ 사건이다. 드라마와 같은 폭언과 폭력, 그 이상의 일들에 비하면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개인으로 시작해서 전사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초기에 얼마든지 해프닝으로 무마될 수 있었지만 신고 이후의 불이익과 3개월의 대기발령, 퇴사 후까지의 사후조치가 지독하다 못해 해도 해도 너무하였다. 뜻하지 않았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던 (명예훼손) 형사 고소와 고용노동부 노동청 진정에 이르는 그 대장정을 기록하게 되었다. 별 일이 아니라면서도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내려는 사측의 지극히 '합법적이고 정당한 대처'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도대체 얼마나 심각해져야, 얼마나 더 악화가 되어야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열 명 남짓의 우리 부서는 퇴사율이 아주 높았는데, 일 년은커녕 수습 기간을 채우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부서장은 창립멤버였는데, 사내에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모든 약속과 룰을 파괴했다. 미팅이 있다며 차에 가서 낮잠을 자고 오고, 한때 회식에 참석하면 n차를 주도하며 의자 위에서 신규입사자 장기자랑을 시켜 타 부서에서는 언급조차 꺼렸다. 그는 늘 본인의 요청이 막무가내인걸 알고 있으면서도 ‘특별히’ 들어주길 원했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억지가 곧 힘이라고 믿었다.
그 밑의 부•차장 상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서장에게 적응하기 위해 닮아간 걸까. 유독 언성이 높거나 전화기를 내리치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난스러운 사람이 바로 나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C다. 그는 혼잣말을 자주 하였는데 '본인이 성격이 나빠서 면전에 대고 얘기해야 된다'며 큰소리를 내는 것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라곤 없었다.
*업무태만과 자격지심이요?
문제는 내가 진급하면서 그들과의 업무가 더 맞닿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인사팀에서 ‘신생 포지션이라 아직 직무설계가 되지 않았다’는 말 그대로 내 직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총알받이를 해주던 전임자가 퇴사하면서 나는 단시간에 진급하였다. 중간관리자 없이 부서장 직속 팀원이었다.
부•차장 상사들은 다른 팀이었지만 C에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는 또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화가 났고 나에게 점점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넘어서 옷차림까지 불필요한 비아냥이 시작되었다. 그가 다른 사람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혼잣말을 크게 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 자리에서 업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부서장이 자리를 비운 때에 C가 내 직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을 요청하였다. 사내 프로그램의 시스템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류가 발생하여 거래처로부터 컴플레인이 발생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자리에 찾아와서 업무 태만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대화가 끝난 뒤에도 연신 ‘웃긴다’며 나의 뒤에서 조롱 어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업무 외 발언을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C는 본인은 혼잣말이라며 되려 나에게 자격지심이 있냐고 몰아세웠다. 자격지심…. 이게 지금 내가 회사에서 근무시간에 듣는 말이 맞는 건가, 두 귀를 의심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부서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며 '은폐'를 원했다. 그러나 은폐하기엔 50여 명의 사무실의 전 직원이 목격하였고, C 역시 갈등이 전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그때 일방적인 은폐가 아니라 당사자들 간의 성숙한 대화가 이뤄졌다면 그 이후의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나는 대화를 원했지만, C도 부서장도 그런 해결 방법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부서장은 업무의 정상화를 위해 나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잊고 극복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나는 C와의 사건으로 인해 공황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어렵다는 '가피 분리(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를 요청하며 임시 자리로 옮겼다. 우리 부서의 일은 한국지사 전체에 빠르게 소문이 돌았고, 이를 알게 된 인사팀을 통해 고충 처리 신고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인사팀이 개입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가장 큰 착각이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