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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Apr 27. 2024

Round 2 벼랑 끝에서 찾아온 기회Ⅱ

직장 내 괴롭힘, 당하거나 맞서거나(4)


*위기이자 기회


정식 고충처리절차에 따라, 신고자인 내가 먼저 '사실확인서'라는 서류를 제출하였다. 인사팀은 인비 사항이라며 보안에 거듭 주의를 주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상대방 C는 결코 조용히 끝내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과장되고 자극적으로 근거 없는 내용을 포함하여 본인의 사실확인서를 부서 전체 이메일에 발송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충처리 과정과 관련 서류 모두 기밀 사항이고, 모든 내용은 인사팀장에게 직접 제출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C가 그 기밀 서류를 본인이 직접 회사의 공용 메일로 그룹발송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작성한 내용은 나의 사실확인서의 내용을 보지 않고서는 작성할 수 없는 반박이었다. 친절한 인사팀 또는 부서장이 인비 사항의 문서를 건네어 주었으리라 아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후로도 인사팀장과 부서장은 나의 면담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회사가 이토록 부서 간 단합이 잘 되는지 처음 알았다. 나의 재직기간을 통틀어 그 어떤 업무보다도 신속하고 조직적인 모습이었다.


- 자리에 찾아오더니 바들바들 떨며 격양된 목소리로 "업무 방해 하지 마세요" 라면서 소리 지르고 따졌다.

- 업무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업무 방관 및 업무소홀 태도로 업체 불만만 돋구는 사건들을 보고 과연 같은 팀인지 의심스러웠다.

- 인사평가에 해가 될까 봐 (C 본인이) 상부 보고도 안 하고 욕먹는 것도 감내하고 마무리 지었는데 후회스럽다.

- 한 사람의 경솔한 행동으로 팀 전체 분위기는 와해되었다.

- 단순한 업무도 처리가 안 되는 건을 수차례 겪다 보니 업무 태만을 넘어 업무 능력 부족이 아닌지 의심된다.

- 자기반성 없이 경거망동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황당하기 그지없다.


연극 대본을 방불케 하는 C의 경멸적 표현은 모든 부서원에게 고스란히 공유되었다. 더 황당한 것은 그것을 확인한 부서장이 유출 사실을 인사팀에 알리지 않고 또다시 '은폐'를 시도한 것이다.


" 현재 본 건은 기밀유지 사항이므로 본 메일 수신자는 바로 메일을 영구삭제하시고 절대 외부 유출하지 말기 바랍니다. 영구 삭제 후 회신 바랍니다. "


이것이 그들의 '해결 방법'인 걸까. 사람을 버젓이 앞에 두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도 아닌 내용을 공개적으로 유출할 땐 언제고, 기록을 없애면 없는 일이 되는 걸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부서장과 인사팀장의 말만 믿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나서야 한다. 부서장 면담 때부터 휴가 기간까지 공개모욕의 모든 자료가 나에게 있었다. 나는 C에 대해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이 가능한지 인터넷으로 유사 사례를 찾아보고 주변에도 소개를 받아가며 전화 상담과 견적상담을 받았다. 여러 곳에 문의하였으나 대부분의 반응은 '모욕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업무와의 관련성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을 비롯한 법적 성립이 불확실'하다는 답이었다. 그러나 딱 한 곳에서 C의 문제의 이메일을 근거로 가능성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미련한 행동이 선물처럼, 벼랑 끝에서 위기이자 기회였다.


그때의 같은 팀의 후임자 D(그는 수습 기간 중에 타사로 이직하여 퇴사예정자였다. 그 회사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과 힘이 되어준 유일한 동료다.)는 “져도 되니까 하고 싶으면 해 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어서 진심으로 건네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기가 생겼다. “질 거면 시작도 안 해. 이길 때까지 할 거야. 끝까지 해봐야지.“ 말을 할 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그 과정이 이렇게 길어지고, 내가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인간이 되리라곤.



*여론형성


그 일이 있고 난 후 가장 먼저 바뀐 것은 같은 부서의 사람들이었다. 같은 부서에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서로 간식을 챙겨주던 E가 있었다. C의 공개모욕 사건 이후, 나는 E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는 나를 못 본척했고, 같은 회의실에 있더라도 눈동자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에서는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없던 -정확하게는 손절을 넘어선 투명 인간 취급하던- E와 같은 사람들이 뒤에서는 그렇게들 시시때때로 내가 걱정된다고 하였다.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밥을 먹을 때나 커피를 마시며, 회식할 때도 빠지지 않고 안줏거리 삼아 가십거리로 일삼는 것이 나에게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여기에서는 어디까지나 진짜 위로와 ’ 위로 하는 척‘하는 가짜 위로를 분별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후자에 해당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요즈음 루머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가 정말 크다. 근거 없이, 때로는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이 마치 사실인 마냥 짜깁기와 도를 넘어섰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소문을 만들어내거나 옮기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실수가 아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실제로 사내에 악의적으로 동료의 거짓 소문을 만들어낸 회사원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있었다. 나도 번거로워서 이런 루머까지 미처 상대하지 못했지만, 증거와 기회가 있었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신중하게, 본인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걱정'한다던 사람들 대부분은 마치 자신은 '가해자와 다르고 굉장히 중립적’이라며 뻔뻔한 합리화를 덧칠했다. 대단한 착각이다. 그들의 가증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학교나 직장 내 괴롭힘도, 사회의 범죄도 주변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고 더 큰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가해이고 어디부터가 피해인 걸까. 이번 일을 계기로 넓은 의미의 그 경계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이에나처럼 소문을 찾아 헤매는 그들의 눈빛과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빨라지는 자판 소리. 궁금하다 못해 부풀리기에 신이 난 그들의 '무관심한 걱정'은 아주 모순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걱정된다'는 말이 나는 그 어떤 말보다 아프다.


결국,

이 집단의 암묵적 허용의 분위기도,

가해자들에게 부여되는 '그럴 수 있다'는 당위성도,

매일 같이 나불거린 그들의 ‘걱정’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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