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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May 01. 2024

Break 위로가 필요할 때

직장 내 괴롭힘, 당하거나 맞서거나(5)


*말 한마디 없이 위로하는 법


(1) 카페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며, 엄벌해서 꼭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가 열을 내어 말하는 게 고마울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 외에 그냥 넘어가지 말고 본때를 보여주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갈 때면 이것저것 신메뉴와 새로 들어온 커피를 내어주곤 한다. 친구네 카페에 다녀오면 어머니가 지어주신 갓 지은 밥을 든든하게 먹은 기분이 든다.


(2) 회사의 사후처리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같은 팀의 동료들은 현장의 목격자로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실 우리 팀이 나를 도와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두 '공중분해 예정자'였기 때문이다. 한 명은 1달 후 퇴사예정자(D), 한 명은 6개월 인턴, 다른 한 명은 단기 알바를 하러 온 내 지인이었다. 이 회사를 계속 다닐 거라는 확신이 없었던 나를 포함해서도 아마도 그 회사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라질 사람들이 사라질 사람을 위해 목소리와 마음을 내어줬다. 동료들에게 고마운 한편, 업무 외적으로도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기만 했다. 특히 퇴사예정자 D는 직장 내 괴롭힘을 비롯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밤낮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나는 매일같이 웃으며 나를 불러주던 D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다. D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도와준다고?'싶을 만큼 모든 과정에 자기 일처럼 두 팔 걷고 나섰다. D와 나는 회사를 떠난 뒤로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3) 친구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세월에 비해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강의를 듣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직장에서의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순간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덩달아 붉어졌다. 사실 내가 그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하셔서 민망한 마음도 있었다. 선생님은 틈이 날 때마다 다른 말보다 밥은 챙겨 먹었는지 늘 안부를 물으셨다. 당시에는 정말 밥이 넘어가지 않았는데, 선생님께 대답하려고 조금이라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여느 때처럼 선생님의 밥 꼭 챙겨 먹으라는 전화를 끊고 눌러왔던 감정이 북받쳐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밥을 챙겨 먹으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유독 선생님의 말과 눈빛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나에게도 따뜻한 어른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4) 엄청난 공감 능력을 가진 ENFP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내 얘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수가 120이 넘어서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다가 쉬어가면서 해야 될 정도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과몰입이라는 말보다는 거의 '동기화'가 된 것 같았다. 특별한 말이 없어도 나의 말을 굉장히 집중해서 듣고, 어떤 부분은 나보다 더 흥분했었는데 그때 그 친구의 눈빛이 정말 힘이 되었다. 회사에서 아무도 묻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내 얘기를, 친구가 이토록 전심으로 들어주니까 나도 깨달았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생기니 나도 회사에 가서 다시 얘기해 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이전까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기 위해 소리 내 끊임없이 맞장구를 치고 호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위로하는 법을 친구로부터 배웠다. 당시 그 친구와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몇 달 후에 이 친구도 다니던 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부당해고까지 겪게 되어 서로 많은 응원을 주고받았다. 내가 받은 것을 친구가 필요할 때 다시 돌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5) 친동생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보살펴 주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가장 필요한 얘기를 해주었다. 동생은 내가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안전장치의 센서처럼 경고음을 내어 멈춰야 할 때를 알려준다. 나는 그 경고가 퍽 고맙다. 지속된 상황에 노출되다 보면 무뎌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의 과정을 단계별로 지켜봤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반면 부모님께는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지금도 모르신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진짜 고민과 힘듦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용기 내 깊은 고민과 고통을 꺼냈다가 상대방의 반응이 내 기대보다 낮았을 때, 흔히 가볍게 듣고 '괜찮아 잘될 거야!' 하는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사회에서 만났기 때문에 솔직히 기대가 없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기대 이상의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회사 사람들처럼 그들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적당히 못 들은 체하고 나를 멀리하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려던 참이었다. 같은 이야기여도 '다른' 반응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을 정확하게 다뤄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든지 논란의 여지는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상대방(C)의 말처럼 내가 '원인제공'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시비비 치열하게 따져보자는 것이다. 없던 일로 조직적으로 은폐하지 말고, 미처 못 본 데가 있나 밝은 데서 꼼꼼하고 정확하게 꺼내보고 싶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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