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레인>>을 읽고
이 책은 2020년 제 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으로 <<긴긴밤>>과 더불어 공동수상한 책이다. 2020년 심사위원들은 예심에서부터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 어느때 보다도 즐거운 심사였다는 공통된 의견으로 공동수상을 결정했다고 한다.
주 종목 자유형, 여섯 살 때 언니를 따라 수영을 시작한 강나루는 한강초등학교 6학년 수영부의 에이스 선수다. 8년동안 강나루는 수영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친구들보다 시간도 빠르게 더 많은 시간을 수영에 투자해서 각종 대회의 우승을 따내는 선수였다. 그러나 롤모델이었던 언니는 종목을 바꾸어 다이빙선수가 되었고, 수영을 포기한 언니는 나루의 눈에 초라하고 창피한 존재가 되어 관계가 소원해진다. 더구나,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라이벌 김초희에게 1위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힘들어 한다. 힘들어 할수록 더 슬럼프에 빠지는 나루에게 코치는 왜 수영을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하지만 시합은 이기기 위해 하는거라 생각하는 나루에게 그런 조언은 이해할 수 없다.
계속된 패배로 나루의 마음속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초희의 부적 같은 수영복을 훔치는 잘못을 저지른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초희에게 사과하고 중요한 시합을 포기하려 할 때 초희가 용서해줘서 친구가 된다는 뻔한 스토리가 될 것 같지만 책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나루의 주변에는 나루와는 다르게 자신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하는 또 다른 열세살의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의 우정과 사랑, 두근거림, 설렘, 능력에 대한 한계, 그에 따르는 두려움과 좌절을 이겨내는 경험을 통한 성장이 있다. 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내용이 감동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읽는 내내 검도를 하고 있는 큰아이가 떠올랐다. 큰아이는 6학년 초부터 검도를 시작했다. 햇수로 6년 차다. 인도에 다녀온 2개월 빠진 때를 제외하고, 함께 했던(심지어 더 일찍 시작했던) 친구가 그만둔 뒤에도 계속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싶어서 남편이 용돈을 주겠다고 꼬득여서 시작한 운동이다. 목표였던 아들은 싫다고 했고, 딸아이만 시작했는데 1년치를 선불로 결재하면 고가의 호구를 준다는 말에 남편이 선뜻 결재하는 바람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어졌다. 딸아이는 아주 재미있어하지도 않았지만 그만두지도 않았고, 중학교 1학년 때 선수를 해보라는 사범님의 제안을 받았으나 쑥스럽다며 거절했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등록을 했고 전국대회에 출전하려고 했으나 하반기에는 시합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딸은 자신이 좋아하던 미술과 검도 중 검도를 선택했고, 3학년 때부터 시합을 나가게 되었으나 코로나로 많은 경기가 취소되었고 그나마 있는 경기도 무관중으로 치러져서 시합에 아이를 따라가보지 못했고, 전국대회 3위 정도가 전적의 전부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기점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검도를 포기하지 않는 아이의 뜻에 따라 사범이 추천하는 특성화고로 진학을 했다. 학교가 수원에 있다보니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했고, 학교가 끝난 후에는 검도관으로 가서 10시 반까지 훈련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훈련시간도 9시 반까지 단축되었고, 시합도 축소되어 별 성과 없이 1학년을 마쳤다. 아이의 고생에 비해 성과없이 끝나는 시합에 남편과 나는 지쳐갔다. 더군다나 딸의 지도를 맡았던 사범님의 은퇴는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고 남편은 노골적으로, 나는 암묵적으로 딸이 그만 둬주기를 바랐다. 그나마 1학년 때는 선배들과 함께 단체전이라도 참석해서 성과가 있었으나 2학년부터는 5번 시합 출전에 5번 모두 성과 없이 끝났고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남편은 당장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학원비를 끊었다. 딸은 완강히 버텼다. 딸과 나의 눈물 섞인 호소에 남편이 져주어 다시 딸의 힘겨운 일상이 시작됐다.
그러다 6월에 처음으로 딸아이 시합을 참관하게 되었다. 잠실에서 시합이 있었는데 8시 3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 집에서 7시 18분에 집을 나섰다. 네비 검색에서는 40분 안팎이어서 여유 있는 출발이라고 생각했는데 출근 시간과 겹치면서 8시 20분에 도착했다.
‘나루는 가끔 시합장이 마법의 공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법사들이 허공에 지팡이를 흔들어 비밀의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커다란 시합장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들어와 보지 않고는 절 대 알 수 없는 세상’ 60p
나루의 표현처럼 나는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 그 세상은 기쁨과 환희만 넘치는 세상이 아니었다. 딸아이가 느꼈을 외로움, 설움, 부모에 대한 미안함,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안됐을 힘겨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맨발로 체육관을 뛰어다니는 수 백명의 선수들을 보며 올라왔다. 우선은 대견했고, 안스러웠고, 미안했다. 검도를 육성하는 학교의 엄마들과 비교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들은 단체로 몰려와 물심양면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촬영해달라는 딸아이를 찍어주며 눈물이 났다. 좀더 일찍 세상의 문을 열었더라면 딸아이가 덜 힘들어 했을텐데....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가장 바랐던 건 딸아이였을 텐데. 그것을 위해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텐데. 그 과정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인내는 지긋지긋하고 그 너머에 있을 열매를 맛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엄마인 나는 딸이 경기장에 선 순간에도 떨려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그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딸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제부터 마음껏 응원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