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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pr 16. 2024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인디언들은 친구를 이렇게 길고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했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였다.

간간히 카톡이나 전화통화는 했지만 사는 곳도 극과 극이고 친구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인지라 시간이 빠듯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일정을 다 맞춰놓아야지만 가능하여 우리는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갑자기 연락해서는 집주소를 물어보더니

“딸기를 먹는데 네 생각이 나지 뭐야? 그래서 두 박스 보내려고, 주소 좀 불러봐. “ 

라며 진짜 오동통통한 딸기 두 박스를 집에 보내왔다. 덕분에 난 그 비싼 딸기를 신나게 먹었었다.


우린 20대 중반에 회사에서 만났다.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입사가 늦었던 그녀는 우리 팀에 들어왔고 내가 그녀의 사수가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털어놓기를,

“나 진짜 첨에 네가 사수였을 때 진짜 아 회사생활 힘들어지겠다 했잖아. 어찌나 깐깐하고 차가워 보였는지 실수 하나만 해도 잡아먹히겠다 싶었다니까? 우리 동기들도 매일 내 안위를 체크했었어. “

내 첫인상이 그녀(그녀의 동기들)에게는 이랬었나 보다. 그러나 우린 그 누구보다 친해졌고 찌든 회사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사실 내가 그녀에게도 그런 존재였는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내가 아일랜드로 떠나는 날에도 만삭의 몸을 끌고 공항까지 나와준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바쁘게 각자의 삶을 살고 간간이 소식을 전하며 생일이 돌아오면 빠지지 않고 선물을 주고받는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로 지냈다. 그러다 부쩍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져 내가 재촉하고 조르고 한 끝에 10년 만에 극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만나면 어색하려나 싶었는데 보자마자 부둥켜안게 되고 설마 눈에 흐르는 이거 눈물이니? 하며 곧 어제 만난 친구처럼 우리 사이엔 오디오가 빈틈없이 채워졌다.


내가 파혼했을 무렵,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 중 소수만이 내막을 알았던 터라 함께 아파해주고 위로해 주었지만, 멀리 지냈던 친구들은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청첩장을 줄 때가 됐는데도 안 주는 거 보니 섣불리 연락도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그냥 잘 안되었나 보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고 했다. 그녀도 그중 하나였고 그날 처음으로 그간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왜 파혼하게 되었는지 대략적으로 덤덤히 전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그걸 어떻게 버텼냐며 견뎌내 주고 이겨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울었다.


이렇게 가까우면서도 멀게 지냈던 다른 친구 한 명도 직접 찾아가 만났다.

그녀 역시 두 아이의 엄마라 움직이기 힘들어 몸 가벼운 내가 가서 만나는 게 최상이었다. 그녀는 엄마처럼 나에게 줄 음식 한 가득을 이미 싸서 한쪽에 두고, 레스토랑에서나 먹을법한 음식을 요리하며 날 맞이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신나게 수다 떨다가 헤어질 무렵, 나를 빤히 보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내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며 날 껴안았다. 차가운 바람은 내 몸을 식게 했지만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어려서부터 늘 내 옆에서, 친자매처럼 같이 기뻐해주고 슬퍼해주며 내가 언제든 달려가도 두 팔 벌려 받아주고 밥 차려주는 친구,

백수시절, 답답한 마음에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갔는데 맛있는 커피 사마시라며 스타벅스 5만원 카드를 보낸 친구,

개떡같이 말해도 신기하게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맘 헤아려주는 친구,

여기에 다 쓸 수 없지만 날 위해 기도해 주는 내 보물 같은 친구들.


인디언들은 어떻게 친구를 두고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라는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직접 옆에서 보살펴주지 못하시기에 엄마를 보내주신 것처럼

살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라고 친구를 보내주신 것 같다.


내가 남자복은 (아직) 없어도 친구복은 많아 감사하다.


친구의 카톡을 받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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