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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최기자 Aug 06. 2024

<우리 뇌는 항상 틀린다>

: 우리 안의 어리석음만 인정해도 괴로움이 절반은 줄어든다.


★ 불편한 진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해석’한 걸

우리(뇌)는 ‘눈으로 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항상 틀리게 설계되어 있다.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편향’이라 부른다.


인지적 편향이란

원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뇌가

‘가끔’ 완벽함에서 벗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 뇌는 ‘원래’ 틀린 판단을 내리게 되어 있으며 

의식적으로 제동을 걸어야

그나마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진화가 덜 돼서?

아니다.



우리 뇌는 진화가 ‘덜’ 돼서가 아니라

진화가 ‘너무’ 돼서 틀린 판단을 내리기 쉽다.



원시시대 때 야생동물이나 인근 부족들에게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이 생겨났고


두려움이 복잡하게 변하며

혐오’나 ‘역겨움’으로 발전했다.



사냥감을 잡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이나 계산을 하면

그날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었고

중요한 위험도 무시하고 일단 달려들고 보는  

직감’이라는 걸 발전시켰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 직감을 위험할 정도로 찬양해 왔다.



이제 난 뭔가 새로운 걸 할 때
‘내 판단은 무조건 틀린다.’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나는 무조건 맞아야 돼. 실수할 수 없어.’가 아니라 

‘나는 실수할 수밖에 없어.’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오만을 줄여주고 쓸데없는 고집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실수가 기본이며, 완벽한 판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진화 역시 ‘완벽한 신의 형상’이라는 모델로 설계된 게 아니라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인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온 과정이라는 것.



인간이 진화된 동물이라는 본질을 이해하며

나를 가로막던 열등감이나 방어기제가

조금씩 풀리는 걸 느낀다.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내게 무한한 가능성을 뜻하는 ‘자유의지’는 없지만  

주어진 범위에서 가까운 미래를 바꿀 ‘선택의지’는 있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이 무례한 돼지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직감’은 없지만 


내 안의 오류와 편향을 인정하고

고집으로 덮인 마음을 유연하게 바꿔나갈

꽤나 큰 힘이 있다.



오늘도 난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

적어도
'내 인생을 아래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낮은 선택’을 하려
좀더 깨어 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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