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신경을 쓰던 일들이 하나 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머릿속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건 늘 아이들의 일이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의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아이들이 해나가야 할 일이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이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들 일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의 고등학교 입시와 둘째의 콩쿨.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작 내 입시 때도 이렇게까지 신경이 곤두섰었나 싶다.
그러나 아들의 입시에는 극도로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지난 금요일, 아들이 희망하는 고등학교 원서를 접수했다. 원서 접수 후 접수 번호를 받으면 1차 실기 영상을 찍어 제출해야 한다. 1차 영상이 통과되면 2차 실기시험. 순차적으로 시험이 통과 되어야지만 합격을 할 수 있는 학교다. 다음 주에 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지금 마음은 긴장의 연속이다.
둘째가 준비하던 콩쿨 날짜도 어제로 잡혔다.
매달 열리는 피아노 콩쿨이 뭐 별거냐 싶지만, 딸에겐 6개월을 준비한 최대 프로젝트다. 방학 때도 늦잠을 포기하고 오전·오후 연습을 나갔고, 콩쿨이 임박해서는 밤 연습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준비하는 태도는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다. 인정이다.
11월에 들어오며 곡의 디테일한 부분이 다듬어지면 이번 달에 콩쿨에 나가고, 안 되면 12월로 넘기자는 약속을 원장선생님과 했다. 콩쿨을 준비해본 사람들은 안다. 곡을 익히는 것보다 마지막 디테일을 잡는 과정이 더 피를 말린다는 것을.
둘째는 초 집중해서 “12월로 넘기지 않고 11월에 콩쿨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잡힌 날짜가 11월 22일. 어제였다.
금요일 밤, 잠들기 전 떨린다며 펑펑 울고 잠든 둘째를 보니 안쓰러웠다. 이렇게 큰 부담을 느끼며 준비하는 것이 맞는가. 그러나 선택은 본인이 했으니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옆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뻔한 말들뿐이다.
“그동안 열심히, 성실하게 준비해 왔으니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서현이 만큼 열심히 준비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많이 떨리면 우황청심환 조금 먹어도 되고, 연습할 때처럼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훌쩍이며 잠든 둘째의 눈은 아침에 팅팅 부어 있었다.
누구도 부담을 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스스로 더 큰 욕심을 내는 둘째를 보면 ‘탑을 찍은 자의 심리적인 압박감’이라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1학년부터 1년에 한 번씩 나갔던 콩쿨에서 연속으로 대상을 받은 둘째는 스스로 욕심을 내고 있었다. 상을 받으면 좋고, 아니면 이번에 내 운은 아니구나 하면 된다고 말해줬지만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콩쿨장에 들어서자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하라는 말을 전하고 대기실로 들여보냈다.
4학년 참가자는 총 26명으로 둘째는 24번째 순서였다.
참가번호 424번.
1분20초라는 짧은 시간에 그동안 준비했던 과정을 평가받는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조금만 더 들어주시지…….’
그러나 그 시간은 참가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되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하는 당사자가 가장 크게 긴장되겠지만, 바라보는 부모와 원장선생님도 긴장하긴 마찬가지다. 모두 핸드폰을 꺼내들고 영상을 찍었다.
중간 실수가 좀 있었지만 유연하게 잘 대처하며 넘겼고, 연습하며 신경 썼던 도입 부분의 왼손 터치와 팔 동작은 나풀대는 나비의 날개 같았다. 무대 위 작은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터치 했을 때와 뻣뻣하게 터치 했을 때의 소리 차이를 알기에 꽤 많이 공을 들였던 부분이다. 나는 작은 퍼포먼스에 집중했다면, 전문가인 원장선생님은 소리의 톤에 집중하셨다. 전문가가 보시기에 한두 군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니, 결과는 기다려봐야 했다.
모든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4학년 결과가 공고되었다.
평소 시력이 좋지 않아 초점도 흐릿한 내 눈에 ‘대상 424번’이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결과를 확인하는 틈에서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와! 대상이야. 서현아, 대상! 축하해. 고생 많았어.”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심했던 그녀는 뚝뚝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로비에서 또다시 강강술래를 했다. 오바쟁이 엄마는 이런 걸로 기분을 좀 내야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전공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많기에, 콩쿨에서의 대상은 3학년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3학년 콩쿨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학원에 떡을 돌리며 기분을 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이런 큰 상이 주어지다니 감사할 일이다.
이번에도 기분이다.
떡 파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