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SNS 피드에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서로 자기를 보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피아니스트와 기타리스트, 팝과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영상과 사진이 뜬다.
고마운 알고리즘이다. 내가 모르는 멋진 아티스트들을 애써 찾지 않아도 내 눈앞에 데려다 주니 말이다.
그 많은 영상 속에서도 내 시선을 단번에 가져가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말 그대로 배우 같은 외모를 가졌거나, 첫 마디에 귀를 사로잡는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계정에 들어가 사진과 영상을 끝까지 내려보다 보면 ‘세상엔 왜 이렇게 천재가 많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잘생김은 때때로 음악적 단점마저 덮어줄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 음악은 청각만을 충족시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무대 위의 이미지와 퍼포먼스가 음악의 일부가 된 시대다.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해 오감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완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적인 곡이라면 우람한 체격의 연주자보다 여리여리한 이가 연주할 때 감정이 더 잘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대 위 아티스트에게 실력과 외형을 함께 가꾸는 일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동원해 자신의 음악을 더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 그것도 아티스트의 태도일 테니까.
그러다 문득 이런 걱정이 스쳤다.
‘이렇게 멋진 아티스트들 틈에서 우리 아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타치는 록스타가 꿈인 아들.
학교 진로조사란에 당당히 ‘록스타’라고 적어낸 녀석이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데려다준 멋진 아티스트들의 영상을 본 날에는 아들을 붙잡고 말하게 된다.
“성형을 해야 하나?... 아니다, 너 날씬 했을 때 지금보다 눈 컸어. 1학년 때 사진 봐봐. 다이어트는 좀 해야겠다. 날씬하고 길쭉한 기타리스트가 확실히 무대에서 멋지더라.”
얼마 전엔 아들의 지저분한 헤어를 거금을 들여 깔끔하게 정리했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파마까지 해서 집채만 하게 보이던 헤어였다. 카더정원 연말 영상을 찍으면 유튜브에 박제될텐데, 제발 예쁘게 헤어스타일을 정리하자고 설득했다. 설득은 통했고 아들의 헤어는 아이돌 헤어로 변신했다.
12월 마지막 일요일, 형들과 함께하는 ‘밴드 이상’의 연말 공연이 잡혀 있다. 그 전까지 다이어트를 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야... 요즘엔 뚱뚱한 기타리스트 하나도 없더라.”
이런 말을 하면 자극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