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는 기본적인 성실함을 장착하고 있다.
회사나 학교는 웬만해서는 지각이나 결석이 없다.
몸이 아프거나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이상 약속한 시간은 정확히 지킨다.
학원이나 합주 역시 칼같이 지켜낸다.
그런데 왜 나는 유독 아들에 대해 ‘성실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남편과 함께 피부과에 보톡스를 맞으러 갔다가, 문득 아들의 성실함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기야, 서현이는 성실하다고 생각되는데… 왜 아들은 성실하다고 안 느껴질까?
학교도 안 빠지고, 지각도 안 하고, 학원도 다 다니고, 합주 시간 약속도 다 지키는데 말이야.”
“자기 눈높이가 높은 거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시술을 마치고 나오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기야, 누워 있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서현이는 70을 꾸준히 유지하는 아이고, 지후는 100으로 달리다가 반감기를 지나 60을 유지하니까… 상대적으로 성실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 계속 100이길 바라니, 60으로 내려가면 ‘뚝 떨어졌다’고 보이니까.”
“그러니까 눈높이가 높은 거라니까. 꾸준히 잘하고 있으니 지켜봐.”
아들과 딸, 둘 다 음악을 하지만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
피아노를 하는 둘째는 잔잔한 파도 같다. 진폭이 거의 없는 고른 리듬으로 학원을 오가며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한다. 그 꾸준함이 지속되니, 옆에서 보기에도 자연스레 ‘꾸준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반면 기타를 하는 아들은 풍랑이 몰아치는 파도 같다. 뭔가에 꽂히면 무섭게 몰아치듯 집중해서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몰아치던 에너지가 잦아들며 잔잔함으로 유지된다.
생각해보니 이 차이를 놓치고 있었다.
둘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70을 유지한다면, 아들은 100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60으로 내려와 그 상태로 유지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성실해 보였던 것뿐이다.
둘째에게는 아직 ‘반감기’가 오지 않았고, 아들에게는 반감기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아차렸다. 반감기가 있다고 해서 성실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말이다.
“자기야, 아들 방문에 ‘성실한 우리 지후’라고 적어서 붙여줘야겠어. 아들도 보고 각성하고, 나도 보고 마음 다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