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음식점을 열겠다 마음먹은 뒤, 나는 도시로 돌아와 멕시칸 음식점에서 경험을 쌓으며 남는 시간에는 알맞은 상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내가 원하는 위치에 내가 원하는 규모로 식당을 열기 위해선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일 빨리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부터 모색했는데, 대기업 재취업부터 원양어선, 골프 캐디도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큰돈을 빠르게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찾진 못했다. 최종적으로는 내 유학 경험과 영어 능력을 살려 강남 학원에서 SAT(미국 수능)를 가르치는 게 가장 빠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을 내린 뒤 먼저 한 달간 SAT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모의고사 점수를 만점 가깝게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공부하며 느꼈던 중요 포인트들과 학생들이 어려워할 것 같은 부분들을 정리한 영상을 만들어서 강남 SAT 학원들에 뿌렸는데, 그중 6곳에서 답장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3곳에서 오퍼를 받았다. 하지만 세 곳 중 어떤 곳도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 때문이었다:
SAT가 시험장에서 노트북으로 시험을 보는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다. 미국 외 국가 학생들은 올해 3월부터 디지털 형식으로 시험을 치렀고, 미국 학생들은 내년 3월부터 디지털 형식을 접하게 된다 (내가 작년에 학원 면접을 보러 다녔을 때 기준이다. 저번달에 미국에서 첫 디지털 SAT가 시행됐다).
문제유형들도 바뀌었는데, 짧게 말해 학원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약간 줄어들었다. 게다가 집합교육이 어려웠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SAT 수업만으로는 학원들의 운영이 어려워졌고, 그들은 학업관리와 아이비리그 입학 컨설팅 쪽으로도 분야를 넓히고 있었다. 내가 받은 오퍼 금액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이 시장에서 드라마틱한 급여 인상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학원 원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가지 기회가 보였다. 과거 SAT는 인터넷에서 쉽게 예전 시험들을 찾을 수 있었고 프린트만 하면 제대로 연습할 수 있었지만, 새로 도입되는 디지털 SAT는 연습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연습을 하려면 디지털 형식의 모의고사를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나는 강사를 준비하며 속속들이 알게 된 시험지식을 기반으로 디지털 SAT 모의고사 플랫폼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쪽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시장규모가 거대한 미국 고등학생들을 주 고객으로 정했다.
제일 먼저 1인 회사를 세운 뒤, 웹사이트를 만들어 줄 웹에이전시를 찾아다녔다. 웹개발 경험이 있긴 했지만 교육 관련 웹사이트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어 업체를 통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약 40개의 업체를 컨택하고 미팅을 진행했는데, 800만 원을 부르는 곳, 1억 5천을 부르는 곳, 대표가 길을 잃어 30분을 늦는 곳, 가격을 먼저 제시하라고 하는 곳까지 참 다양했는데, 포트폴리오와 대표의 느낌, 사무실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표정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그 후로는 쭉 달렸던 것 같다. 2,000개의 시험문제와 해설을 만드는 것은 AI를 활용했어도 실질적으로는 엄청난 노가다였다. 문제를 푸는 것과 문제를 만드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결국엔 완성을 시켰다. 그와 동시에 채점 알고리즘, 가격 책정, 카드사 심사, 해외결제 시스템, 맥북 호환성, 개발/디자인 피드백, 기능검증, 웹사이트명, .com 도메인 같은 이슈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그 외에도 강사 면접을 봤던 학원들에 웹사이트를 들고 다시 찾아갔던 일, 런칭을 일주일 앞두고 개선점이 눈앞에 아른거려 런칭을 두 달이나 미뤘던 일, 광고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잡으로 알바를 뛰었던 일, 부탁하기도 전에 보태 쓰라며 지인이 돈을 빌려줬던 일 등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분되는 지난날들이었지만 정말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텐션이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고 무엇보다 고립감과 외로움, 불안감과 조급함이 수시로 엄습했다. 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예전보다 몸을 더 많이 움직이고 주변 사람들을 많이 찾았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거나 안 먹던 술을 마시고 새벽에 맥도날드를 시키는 등 직관에 반대되는 여러 '노력들'도 했다.
동업자나 직원에 대해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매출이 나올 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결국 괴로워도 혼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실이 내 사업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인건비나 임대료가 고정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니 마진율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내 수익만 조정하면 되기 때문에 가격 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들을 마음껏 시험해보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웹사이트는 올해 1월 런칭 이후, 4월 현재 누적 가입자 16,000명을 돌파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거대 플랫폼에 속한 채널이 아니기에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결과다. 2년 전쯤 삼성전자를 퇴사하며 "지금까지 받았던 월급만큼 벌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썼었는데 그게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이 시장도 내가 웹사이트를 처음 기획했을 때와는 다르게 어느새 치열한 레드오션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서로 자기네 사이트가 최고라며 광고비를 태우고 있다. 그래서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2023년의 나는 이곳에 모든 걸 쏟아부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에 인생에서 남을 기억을 하나 더 만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