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흉을 보는 이상한 사람
가까운 어른들 중 한 명은 툭하면 이런 소리를 했다. "세상살이 우정은 없어. 남자건 여자건 짝 만나면 다 연락 두절이다.” 듣기 싫은 말이었고 믿은 적도 없다지만 실제로 내가 만난 몇몇 친구들은 연애만 했다 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댔다. 입만 열면 애인 얘기를 했고 다른 사람이 앞에 있어도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꽁냥꽁냥 애인과 연락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만나기로 한 날마다 애인과 싸워서 풀어줘야 한다는 둥 별 핑계로 약속을 미뤄 난처하게 하더니, 헤어지기라도 하면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울어대는 통에 몇 시간이고 하소연을 듣고 달래줘야 했다. 그리고는 금세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거나 아니면 환승을 하고서 나를 포함한 친구들을 뒷전으로 미루기를 반복했다.
그 꼴이 참 보기 싫었다. 친구에 대한 소유욕? 질투심? 아니다. 친구가 나를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아서 속상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뿌듯하거나 고마워야 할 일이었다. 내가 기분이 나빴던 건, 같이 있는 동안에 우리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다. 지들만 더 중요한 게 있나? 꼭 연애가 아니어도 내 삶에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우리가 각자 소중한 시간을 빼서 만난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는 사람을 보는 건 정말이지 시간 아깝고 하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친구들을 하나 둘 거치며 나는 연애 대상에게 목매는 사람을 볼 때면 그 무엇보다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도록 진화했다.
어려서부터 자기 계발에 유독 관심이 많던 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책이나 강연을 틈만 나면 찾아봤었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 중 하나는 "자랑하지 말라"는 거였다. 특히 자식 자랑하지 말라고. 아이가 없는 내게는 그 얘기가 내 사람들 자랑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내 자랑은 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근데 내 가족이나 연인, 내 친구들이 잘난 건 그들의 몫이니 내가 자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연인 자랑은 무게가 남달랐다. 너무 일시적인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원래도 손발 오그라드는 애정표현을 잘 못하는 내가 친구들 앞에서 내 남자친구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는 건 나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일과도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였나. 언제부턴가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어디 가서 내 연인을 치켜세우기는커녕 깎아내리기만 하는 못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성을 볼 때 얼굴을 가장 먼저 보던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잘생긴 남자애들을 사귀곤 했는데 그래서 자주 듣던 말이 “너 남자친구 진짜 잘생겼다”같은 말이었고, 나는 굳이 수긍하지 않았다. 이를 테면 “별로”, “그닥”, “그래?” 따위의 대답을 건넸고, 나아가 친구들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고민상담을 핑계로 내 남자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들춰 떠벌려야만 마음이 편했다. 습관적으로 상대를 내려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차, 도가 지나쳤다 싶어서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 사람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치켜세우는 게 워낙 민망한 일인지라, 낯 뜨겁게 자랑질해 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흉을 보는 게 백 번 낫다고 믿었다.
다른 지역의 사람과 연애를 했다면 또 달랐을 테지만 나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을 뉴스에서 보고 들으며 낯선 사람들에 대한 깊은 경계를 품고 살았다. 헌팅이나 소개팅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내 연애는 항상 학교나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사이에서 이뤄졌기에, 생활 반경과 인맥층이 겹친 상태에서 내가 있던 어느 집단에서든 이른바 돌려 사귀는 문화가 성행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작은 집단에서는 친구며 애인이며 전여친 전남친이며 오만가지의 관계가 뒤섞여 하여간 말이 퍼지기에도 용이했고 서로서로 엮이기도 참 쉬웠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내가 나름대로 고안해 낸 생존법이란 게 '좋아하는 티 내지 않기'였던 것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앙증, 러블리 같은 키워드와는 거리가 먼 성격을 가지고 살아온 터라 언제든 센 척, 무심한 척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 이렇게 나는 남들이 보기에 항상 툴툴대는 연애를 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던 나는 결국 결혼 3년 차에 접어들고 나서야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괌에서 사는 동안만 해도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게 남편을 포함해 친구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녔기에 내 미숙한 태도가 고쳐질 새가 없었다. 괌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를 제법 오래 보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내가 가끔씩 철없는 소리를 해도 나를, 내 남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쟤가 또 부끄러워서 저러나 보다,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나는 익숙해 있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내 남편은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웬만해선 남들 앞에서 우리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내 앞에서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이야기면 더더욱.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쨌든 그는 안다. 내게 그는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고 내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그래서 내가 가끔 남들 앞에서 쌀쌀맞게 대해도 많이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알콩달콩 사적인 애정행각은 사적인 공간에서 행하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나를 이해해 주었다.
남편과 나는 작년에 플로리다에 왔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는 대대손손 대를 이어 사는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로,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이다.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내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물을 때마다 나는 늘 그랬듯 가볍디 가벼운 농담조로 답하곤 했다. 연애시절 이야기나 데이트 내용 따위를 물으면 왜 그런 걸 묻냐고 저리 가라고 답했고, 영원한 사랑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딨냐며 손사래를 쳤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와 남편은 각자의 취미생활이 있어서 각각 따로 보내는 시간이 제법 자주 있는 편인데, 부부가 왜 모든 걸 같이 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서로 좋아하는 게 달라서”라고 사실대로 답했다. 굳이 그럴싸하게 포장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남편과 한 달을 사이좋게 지내다가 하루를 싸우면 나는 싸운 그 하루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남편의 100개의 장점과 3개의 단점 중 세 가지 단점들에 대해서만 털어놓았다. 욕보이게 하려던 건 물론 아니다. 원래 사람이란 게 하나 빼고 다 좋으면 다 좋은 점은 제쳐두고 부족한 그 하나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나도 마찬가지로 사소한 싸움이나 남편의 작은 단점이 내 나름대로의 고민거리였으니 입 밖에 꺼낸 거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내 반응들이 축적되어 내 지인들은 어느샌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와 남편의 관계를 멋대로 단정 짓고 수군대고 있었다. 저 둘은 진지한 관계가 아니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등등 자기들끼리 우리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찼다는 황당한 말을 전해 들은 건 플로리아에 새 터전을 꾸린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진지하게 말해야 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으니 무례하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말라”고. 워낙 남한테 관심이 없는 편인 나는 정작 그들의 가족에 대해, 인생에 대해, 내가 동의하지 않는 그들의 종교관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뒤에서는 물론 앞에서도 실례가 될 법한 질문 따위는 꺼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무례함이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미국인들 다 개인주의고 남한테 관심 없다더니 순 뻥이었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은 나빴지만 더 늦기 전에 내 어리석음을 바로 잡을 수 있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지금 나와 내 남편의 관계가 서로 평생을 약속한 만큼 남들 눈에도 아주 무겁고 진중한 관계라는 걸, 나이와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 만큼 주변의 시선도 내가 익숙해 있던 철부지 시절의 세상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셈이다. 여전히 내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와 내 남편의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을 그만두려면 입조심은 필요할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서 더욱 그렇다. 남편 자랑이 낯간지러워서 흉을 보는 나는 누가 봐도 참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