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자유에 향하세요
7시 15분
짐을 정리한다고 이르게 일어났다. 기숙사에 머무는 동안 나의 룸메이트는 진선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준비시간이 점점 줄고, 잠자는 시간을 얻는 편이었는데, 진선은 한결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내가 비몽사몽 잠에서 깰 때면 언제나 “나 드라이기 한 번만 해도 돼?”라고 정중히 물었다. 오늘도 진선은 나보다 일찍 잠을 깨워 준비를 바지런히 마쳤다. 잠과의 사투가 끝나지 않아 정신이 들지 않은 나를 두고 기숙사를 정갈한 모습으로 정리했다. 이름에 ‘참할 진’ 자를 쓴다고 했다. 진선의 심성과 잘 맞닿아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9시 21분
짐을 한 곳에 몰아 두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리가 나주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추천해 준 혁신도시 방향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이르게 문을 여는 카페를 기준으로 찾아, 택시를 나눠 타고 이동했다. 여행 중 만난 택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수길이 택시기사님과 라포를 쌓는 건 언제나 경이롭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작두를 탄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택시를 타면 자연스럽게 기사님의 옆 자리에 앉는 수길은 우리는 나주에 온 객이며, 현지인으로서의 추천지를 물어 1단계를, ‘보성’이라는 전라도 출신임을 내세우며 2단계를, 다양한 변주를 섞어 그다음은 3단계를.. 그 기법은 다양한데 듣고 있자니 어느 순간엔 엄마가 만들어 주신 꼬막 요리를, 나주에 시공 중이었다던 어느 학교에 대한 소식을, 근래 선생님들 같은 연수생들이 왔었다는 후문을… 나누고 있었다. 여행 내내 수길과 함께 다섯 번 정도 택시를 탔는데, 나는 언제나 뒷자리에 앉아 그냥 입을 떡떡 벌리며 감탄만 하다 종착지에 다다랐다.
9시 46분
나주고에서 차 타고 15분 나가면 있는 카페 5블록은 페스츄리를 잘하는 집이었다. 오전 시간에 방문하면, 음료 한 잔에 크루아상을 오백 원에 제공하는 혜자 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메뉴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누군가의 ‘나주 밀크티’ 선창에 모두 같은 메뉴를 골라 담았다. 밀크티에 ‘나주’라는 이름이 붙은 건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껏 먹어본 밀크티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았다. 우리는 2층의 볕이 (너무) 잘 드는 넓은 자리에 앉아, 크루아상을 먹을 만큼만 각자 잘라먹으며 대화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첫사랑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터무니없는 밸런스 주제를 가지고 한참을 논쟁했다.
10시 47분
카페에서 보이는 전경에 빛가람 전망대가 있었다. 탐이 나는 것이 있으면 쟁취해야 적성이 풀리는 일행이 있었으므로 우린 폭염주의가 내린 날씨에 전망대를 향해 당차게 걸어 올랐다. 분명 오르기 전에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종착쯤 될 것이라고 예상한 만큼 오르고 보니, 굴곡이 져 아래에서 보이지 않은 부분이 오른 만큼이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희재는 저번 여행 때 분명 전망대를 오를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두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으니, 우리는 어쨌거나 저쨌거나 각자의 속도에 맞춰 정상에 올랐다. 건물에 먼저 올라 내부에 들어서 상황을 살피는데, 전망대가 하필이면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땀을 흘린 게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게 여행의 맛이지-라고 생각했다. 전망을 볼 수 없는 대신, 하산하는 모노레일을 이용료 없이 탈 수 있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레일을 타고 내려가 만난 건물 안에서 비 오듯 쏟은 땀을 잠시 식히고, 옥상에 올라 나주의 전망을 봤다. 함께 하는 시간이 슬슬 녹는다. 아쉽고, 반가웠다고 곱씹으며 우린 나주고로 돌아왔다.
12시 31분
오늘은 자장면과 마라 찹쌀탕수육. 급식과 트렌드가 합쳐질 때 그 맛이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었기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마라 찹쌀탕수육은 ‘마라’와 ‘찹쌀’, 그리고 ‘탕수육’이 조화로웠다. 오늘도 ‘역시나! (맛있다)’ 싶은 생각을 하며, 다 먹어 갈 때 즈음 우리는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사실 어제 선생님과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어 말씀드렸더니, 요런 저런의 이유로 거절하셨기 때문이다. 대신 내일 함께 할 것에 약속도장을 찍었고, 그 타이밍을 노렸다. 역시나 오늘도 머리가 못나서-, 얼굴이-, 바빠서- 하시며 아쉬운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의 팔 사이에 내 팔을 슬슬 끼워 넣으며 “엄마” 했다. 선생님은 “으메- 엄마 해 부리네….. 그라치. 엄마가 맞지.” 하며 못 이기는 척 포즈를 잡아 주셨다. 팔을 두른 내 손을 그러잡고 다정히 톡톡 두들기셨다. 우리는 기회를 놓칠세라 잽싸게 선생님 주변을 둘러 자세를 취했다. 남는 건 사진일 수 있음에 감사했다.
13시 30분 <어서오세요, 휴먼라이브러리입니다.>
나주고에서의 마지막 수업은 내가 맡게 되었다. 주제어는 소통과 타자인정, 그리고 포용.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으나, 잊어서는 안 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 자체로 세상에 수용되고 안정할 수 있도록. ‘휴먼 라이브러리’라는 주제는 작년, 대전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탐방하며 만난 한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람이 그 자체로 책이 되어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일.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인정할 수 있도록 소개하며, 타인에게 ‘나’ 그 자체를 대여해 주기 위해 마땅한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개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내가 ‘휴먼 북’이 될 것을 제안하셨다. 그 뜻이 귀해, 이번 수업으로 구상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휴먼북과 휴먼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을 소개해주며 수업의 갈래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여섯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자신만의 미니 북에 채워 나가며, 모둠에 앉은 친구들과 내용을 공유한다. 내가 제시한 물음은 ‘나는 어떤 책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나의 키워드를 뽑아볼 것’, ‘나라는 휴먼북의 제목을 지어볼 것’, ‘책의 목차와 담을 내용을 생각해 볼 것’, ‘나는 어떤 이에게 필요한 책인지 고민해 볼 것’, ‘나는 어떤 책을 빌려보고 싶은지 생각해 볼 것’, ‘나는 휴먼북으로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펼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볼 것’. 조금은 철학적으로 다가오거나, 답을 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수업인 만큼, 여행하는 선생님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함께 도출하는 시간을 보내는 걸 목표 삼았다.
나흘동안, 나의 동지들은 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해 부단히 고민할 수 있도록 수업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를 살피고 그를 거름 삼아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종국에는 세상에 어떤 울림이 될지, 내가 가진 특질이 이 세상의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한 시간이었다. 동지의 수업을 아이들과 내내 수강하며, 함께 성장함을 느꼈다. 수많은 수업시연으로 단련된 교대생과 사범대생의 수업은 어떤 흐름을 가지는지, 아이들이 어려워할 땐 어떤 장치로 상황을 이끄는지와 같은 방법론뿐만이 아니라,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얼마나 총명한지, 발화되는 음성엔 어떤 진중함이 담겨있는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어찌나 차분한지. 수업의 유형의 따라 아이들은 내면의 이야기를 변주하며 틔웠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골몰하는 시간을 쌓으며, 마지막으로 준비된 나의 수업이 전해야 하는 메시지의 갈피를 잡았다.
스스로를 휴먼 북으로 만들고 나서는, 여쌤들에게 본인을 대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득, 내가 구상한 수업을 따라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열띤 목소리가 오가는 순간이 벅찼다. 모둠을 오가며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어떤 아이는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오며 인간관계에 능하므로, 연애에 대한 조언을 능숙하게 해냈고, 또 어떤 아이는 취미로 가진 베이킹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누군가와 텍스트로 대화를 나눌 때 맞춤법에 오류가 있는 걸 참지 못하겠다고 이야기 한 아이는 어긋난 표현이나 맞춤법을 교정하는 휴먼북이 되었고, 국제외교 혹은 프로그래밍처럼 전문가의 면모를 빛낸 아이도 있었다. 저마다 자신만의 주제어를 품고 여쌤의 질문에 습관처럼 익은 내용을 다루듯 경험과 지혜를 꺼내 놓는 순간이 귀했다.
대여를 마무리하고, 수업을 톺아보며 나는 ‘인정과 포용의 세상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하나의 방법으로 휴먼 북이 되어 본 것처럼, 이모양저모양으로 굴러가는 세상의 모난 면도 끌어안아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론을 구축했으면 했다. 당신의 고유함이 마모될 일 없이 이 사회에 그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같은 목적을 좇는 이가 모여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에 적합한 수업이었기를 바라며, 주어진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2022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문득, 글을 짓고 싶었다. 정리되지 않은 의구심으로 가득한 학창 시절이라고 생각했으나, 새로운 환경을 앞두자 그 의미가 정돈되는 듯했다. 작은 사회에서 서로의 치기 어린 순간을 목격한 동지들에게, 성인으로서 마주할 세계에 들어서기 이전에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이 마음으로 지은 글을 나주고의 아이들에게도 선물했다. 우연이란 예측할 수 없어야 완전하기에 약속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다시 마주하길 바라며. 언제나 응원할 마음을 전했다.
‘덧나지 않고 기죽지 말고 무던히, 생을 뚜벅뚜벅 걷길
자신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던 모습 그대로, 다시 안부를 묻길
혹여 존재의 의문을 품을 때엔 세심히 너를 곱씹어 기억해 둔 나를 찾아주길
아끼고 응원하는 사람아, 너의 자유를 좇길’
-청춘을 함께 한 이들에게 (2022.03.01)-
18시 15분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언제나 아쉬운 시간은 부지런히 흐른다. 서운함이 덕지덕지 묻은 아이들의 표정, 이방인으로서 바랄 수 없는 정을 내어 주신 선생님,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한 충만하고 안락한 시간을 두고 떠나는 것이 여간 서운했다.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할 동력이니까. 하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동지들은 피곤했는지, 곧 소음이 멎었다. 날이 저물어 길게 늘어진 태양 빛에 찰랑이는 논밭이 흘렀다. 그리고 노래를 들었다. 이전에 자주 찾았던 것이 근래에 미루어지게 된 그런 음성들을 찾았다. 백예린의 ‘돌아가자’. 싱그러우나 비어 버린 시절에 대한 공상. 그를 노래하는 음악을 들었다.
“이제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니
돌아가자 익숙한 저 언덕 너머
혹시 내가 문득 그리워진대도
돌아가자 이젠 낯설기만 한 일상 속으로”
잠이 들지 않고 한참을 숨죽였다. 살갗이 지분지분 짓눌리는 듯했다. 가슴깨가 뻐근했다. 당장은 형용할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경험이 내게 어떤 커다란 의미가 되었음은 직감하고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 나의 불안을 그 누구도 보듬어줄 수 없던 때. 좇을 자유마저 허망하던 기억. 나를 구성하던 것이 붕괴되었으나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관망하던 경험. 내 학창의 종착은 지금인 듯싶고, 비로소 맺었구나. 싶었다. 어린 나에게 사의 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때의 나를 돌보지 못한 것을 탄하는 마음으로, 존재만으로 고유한 아이들이 스스로가 퇴색되는 과정을 허망하게 바라보지 않길 바라며 아이들을 마주했다. 위안이 되고자 했는데, 위로받았다. 정리되지 못한 마음이 잔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야지 싶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혹은 그럼에도 살아 봐야지 말고, 살아야지. 고유하게 살아가야지. 아이들의 동경을 받은 내가 좌절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귀함을 감히 관찰한 내가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나를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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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이 된 여러분, 자유에 향하세요
교정을 떠났다가, 다시 깊숙이 들어와 보니 별안간 발견한 게 있습니다. 학교의 어른은 열렬이 학생을 사랑하시고, 그 마음은 시샘이 들 정도로 귀합니다
그 시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은 걱정이 무색하게 고유하고, 더할 나위 없이 기특합니다
금방이에요
스물이 되고 또 언젠가
그때의 나를 다시 살필 수 있길 바랍니다
응원해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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