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적은 글을 다시금 읽어보니 ‘문득’이라는 단어의 빈도가 잦다. ‘생각이나 느낌 따위가 갑자기 떠오르는 모양’. 영감과 귀감이 되는 것들은 문득 찾아온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아직 가늠하지 못한 세계를 공상하게 했다. 혹은 기억 저편에 넘어가 있던 어떤 가치나 경험을 찾아 부르거나, 감각하진 못했으나 어렴풋이 배워 알고 있던 감정을 문득 이해하게 했다. 적잖이 귀하다. 우린 그런 일을 해냈다.
나의 언어로 그들을 묘사한다니 기꺼운 마음이 드는, 나주의 여름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
유정
열정이 넘치는 사람. 목소리가 단단하니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는데 이 마음을 동력 삼아 완전해질 때까지 연습을 거듭하는 사람. 순간의 기억을 사진으로 추억하며, 별안간 맞이하는 풍경에 넋을 놓고 기뻐하는 순간이 많았다. 감정이 담긴 표정이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나는 유정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세준
웃음이 많은 사람. 어렵지 않게 웃음소리를 들려주는데, 매번 그 음성이 좋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흐를 순간에 가만히 그 반응을 기다렸다. 아이들을 애정하는 사람. 작은 호기심에 한없이 기특해하거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와르르 쏟는 웃음을 들려주는 사람. 그는 나의 선생이기도 했다. 칭찬을 받으면 기뻤고, 나로 인해 웃으면 위안이 되었다.
수길
라포 형성 권위자. 개방된 댐에 물이 쓸려 들어오듯, 수월하게 사람의 마음을 산다.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내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대화 중 다음 문장은 어떻게 이을지 예측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제나 예상은 빗나갔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함께 있으면 못 살 마음이 없어 보였다. 화려하진 않아도, 마음을 든든하게 데우는 국밥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소개가 참 잘 어울렸다.
진선
이름에 ‘참할 진’을 쓴다던데, 참 걸맞은 이름을 가졌다. 더할 나위 없이 선한 사람. 작은 행위 하나에도 상대를 배려하며, 헤아려 물었다. 진선의 수업을 들을 때면, 선함이 묻어나는 음성과 천천히 담는 이야기에 절로 단정해지는 듯했다. 진선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난다면, 가장 깨끗한 모습으로 오래 지켜줄 거 같다.
희재
여행을 함께 한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알고 지낸 사이인데, 처음 알기가 어려웠다. 시간을 공유하며, 문득 어떤 사람인지를 관찰하는 순간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보드게임을 하다 벌칙순위에 걸릴 때나, 한껏 들뜬 분위기로 노래방에 방문했을 때 살포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좋았다. 눈동자가 망울 하고, 행동이 예쁘다. 개성이 강한 개인들 가운데에서 잔잔한 수면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주의 여름을 기록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