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어린이란?
처음부터 어린이를 그렇게 좋아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초등교사가 되었고, 어린이를 항상 만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내가 무언가를 가르쳐 줘야 할 미숙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직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조절하기 어려운 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래서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계몽(?)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너그러운 어른인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열폭할 때도 많았지만;;;)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다.
꼬물꼬물 귀여운 이 아이,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 좋은 것만 주고 싶어 노력하며 만난 이 아이처럼,
우리 반 말썽쟁이, 장난꾸러기들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흔한 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존재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반 아이들에게 엄격함보다는 따뜻함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한편, 소중한 큰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고 주었지만 첫사랑이라 그런지 많이 미숙했던 것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주고 싶은 사랑, 육아서에서 말하는 사랑을 주느라 정작 아이의 눈빛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사실을 둘째 아이를 낳고서 깨달았다.
꼬물거리는 손과 입, 미소만으로도, 존재만으로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 이 순간들이 아깝고,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들, 온전히 그 모습과 순간들을 누리면서 큰 아이에게 이렇게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주지 못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잘 크고 있는지, 이게 맞는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 뭔가 잘하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 아이의 속도보다 좀 더 빠른 속도로 한 발 먼저 가서 아이를 채근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나이에 맞게 충분히 누렸어야 할 어린아이 시절을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봐주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둘째를 바라보는 너그러운 시선 속에는 이 아이 안에 온 세상이 있음을, 이 아이가 가진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조건 없이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 둘째는 현재 영락없는 어린이다. ENFP 자유로운 영혼인 어린이. 배가 부르고 기분 좋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속상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솔직하게 말이나 눈물로 표현하고, 누군가 슬프거나 힘들어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공감해 주는 아이. 어린이...
이제 나는 어린이를 새롭게 바라본다. 학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린이. 그들은 나보다 부족하거나 미숙하지 않다. 아직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 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모르고 있는 것임을. 그러나 그들 속에는 너무나 솔직하고, 순수하고, 편견 없는 맑은 눈과, 나와 다른 점이 있는 친구들을 품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따뜻한 마음을 지녔음을 이제는 안다. 한 명 한 명 그 속엔 나중에 멋지게 피어날 꽃과 나무의 씨앗을 가진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 좋은 것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금방 흡수해서 더 멋진 말과 모습들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어린이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첫째라서, 감정을 억누르고 동생을 챙기느라 의젓한 행동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한 아이들을 보면 한 번 더 말 걸어 주고 싶다. 충분히 어린 시절을 더 누리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억울한 마음이 많이 쌓인 아이들은 거친 말과 행동을 통해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한 번 더 이야기 들어주고 싶다. 지금의 어린이를 보면서 우리 큰 아이의 어린이와 나의 어린이가 오버랩된다. 상처받은 아이, 불안한 아이, 외로운 아이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 함께 눈물 흘리기도 하고 그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나누고, 마음이 연결됨을 느낄 땐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순수함을, 솔직함을, 인내심을, 끈기를, 너그러움을. 함께 모아 놓으면 전쟁터 같은 하루이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비로소 어린이를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내 일과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나의 시선이 변한 것처럼, 어린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더 따뜻해지고 어린이들이 좀 더 행복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아이들의 실수에 좀 더 관대해지고 아이들이 실수에서 무언가 하나를 배울 수 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아이들이 저마다 가진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누구에게나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실수하고 해맑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 어린이가 지금의 어른인 내가 되었듯, 지금의 소중한 어린이들이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래본다.
***마들랜: 마음을 들여다보는 랜선 글쓰기 모임의 세 번째 글입니다. 주제는 '어린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