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작가의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기억하며
최은미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면 나는 단연코 환상성에 대해 이야기 할 것 같다.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들은 결코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나 일어날법한 사건들을 보여주며, 그러한 현실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작가만의 이야기 기법은 자꾸만 우리가 맞닿아있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최은미 작가 특유의 환상성을 엿볼 수 있다. 작중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는 내린천 휴게소에 대한 묘사만 봐도 그렇다. 어둠 속 붕 떠 있는 비행접시처럼 홀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내린천 휴게소. 그곳에서 창용이 오빠네를 만나러 가기 위해 유정과 유태는 미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그러한 주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어떠한 경로를 탔다는 점에 있다. 유정과 유태는 고속도로를 타고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작중묘사에 따르면 그들은 짧고 긴, 열 개 이상의 터널을 넘게 빠져나왔다고 이야기 되는데, 유정은 결국 이러한 터널을 지나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토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마치 유정이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줬다고 생각했다. 소설 초반에 딸인 소은이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재미처럼 풀어내던, 제발 아름다웠길 바랬던 그 시간 속으로 말이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미산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일 년 전 글을 쓰기 위해, 아니 자신을 가장 부딪치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발버둥 쳤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겼던 창용이 오빠를 만나게 된 역시 이러한 그녀의 굴레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의 기억 속에서 창용이 오빠는 자전거를 태워주던, 그깟 자전거라는 자신의 말에 상처를 받던 어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억 속 창용이 오빠는 더 이상 현재의 인물은 아니다. 정작 그 사건에 대해 창용이 오빠에게 믈어봤을 때 그가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여전히 유정을 제외한 인물들이 그 시간을 넘겨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도 해서 조금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유정이 친족인 재상이 삼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건이 밝혀졌을 때 분노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 이유조차 자신에게 이유를 찾아가면서 여전히 과거의 시간에 함몰된 채 살아가고 있는데, 창용이 오빠와 유태의 작중 행적을 보면 마치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가령, 내린천 휴게소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유정을 빼놓고 그들끼리만 쑥덕거렸던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가족이라는, 혹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유정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답지 않게 자기들끼리만의 이야기를 하며 유정의 시선을 끝까지 무시하는 모습은 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유정과는 전혀 안면이 없던, 베트남에서 온 창용이 오빠의 부인인 디엔만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장면은 결국에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소외라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만이 유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유정이 유태를 다치게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그러한 사연에 있을 듯 싶었다. 가령 작중에서 유태의 행적을 보면 유정의 말을 정말 안 듣는 인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반 장면만 하더라도 방향제는 놓을지언정 유정이 놓으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공기청정기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점이나 유정이 좆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족이라고 고쳐 말하는 것처럼 그는 사사건건 유정이 하는 일에 태클은 거는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와중에 재상이 삼촌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고향의 땅을 사라는 삼촌의 말에 홀려 바로 땅을 계약하러 간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렸을 적 삼촌이 쥐어 줬던 깡통을 들고, 쥐불놀이를 할 때 설령 불덩이가 자신의 머리로 떨어질지언정 그는 삼촌이 하는 행동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유태의 이러한 행동이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유정이 하는 모든 것들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나는 누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며 장담하는 말하는 그의 태도는 과연 유태가 삼촌과 근본적으로 같은 인물인 건지 계속 의심이 되었다. 또한 후반부 유태의 대사를 보면 누나한테는 소설 먼저, 가족들 생각을 해봤냐는 말이 등장하는데, 정작 본인 역시도 무책임하게 재상이 삼촌의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서 유정에게 자신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 알아달라는 것은 결국 그녀 자신에게 유정이 트라우마를 겪기 시작한 과거부터 계속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어떻게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건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유태 역시 소은에게 그러한 삼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폭력적인 상황 속에 갇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유정의 상황도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피해자인 유정만이 그 시간에 멈춰서 자신을 자책하는 그러한 상황이 내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럼에도 그 시간 속에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만 나와야 한다는 점이 더욱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가령, 선생님의 어떠한 위로도 유정에게 닿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친 듯이 가슴을 두드렸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유정이 스스로 차 쪽으로 뛰어드는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사건을 유정의 시점에서 보면 눈앞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유태의 모습을 저만치 밀어버렸다고 묘사되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어서 그만큼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는데, 폭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듯한 유정의 태도가 종국에는 피해자만이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 확장시켜 생각해보게 만드는 해서 더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았던 것 같다.
또한 그녀가 죽음이라는 형태의 체념에 빠졌을 때, 마지막에 유정에 대해 가장 먼저 발견해준 것이 디엔이었다는 점은 결국에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만이 오로지 그녀에 대해 눈치챌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 하다. 이는 어쩌면 디엔 역시도 창용의 곁에서 폭력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유정이 직접적으로 디엔에게 전화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속눈썹 펌을 하러 온다는 간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도 어쩌면 그러한 상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유정이 소은의 곁으로 향하는, 터널로 가는 그 길이 제발 평탄하기를 바랬다. 내린천 휴게소에서 내내 느꼈던 미산의 추위를 떨쳐버리고, 유정이 홀로 붕 뜬 비행접시에서 체념하지 않기를. 터널 벽을 뚫어버리더라도 그녀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모든 사람들이 터널 끝에 있는 햇빛 속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게 만드는, ‘내게 내가 나일 그때’가 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