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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pr 01. 2024

로망이 현실로 되었을 때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 낸 현실이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

테헤란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늘 '판교'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그곳이 궁금했다. 최신 기술과 정보들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스마트한 도시 느낌이 있어서일까. 그곳에 가면 뭔가 나도 스마트한 직장인이 될 것만 같았다.


사람이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생각을 품고 있으니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IT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운 좋게 AI 활용 교육회사로 이직을 성공하게 되었다. 


판교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 첫날, 매우 만족스러웠다. 출퇴근 시간이 기존 1시간 내외에서 40~50분으로 단축되었다. 시간 상으로는 10~20분 단축이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환승도 하지 않고, 신분당선으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리트가 된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아마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만족은 한 주를 넘기지 못했다. 입사 첫 주에 청천벽력 같은 정보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입사 첫 주 혹은 한 달 정도는 신규 입사자를 보통 잘 챙겨주기 마련이다. 밥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처음 만난 사이이기에 흔히 오가는 단골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어디서 일했어요?
전공이 뭐예요?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그렇다. 회사에서 만난 관계이기에 오갈 수 있는 질문이 주로 직장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이런 흔한 질문들이 오갔던 것이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정보가 되어 돌아왔다. 바로 내 '연봉' 산정기준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 연봉이야기가 얼마나 예민한 주제이던가. 애당초 이전 회사보다 연봉을 낮추고 들어왔기에 기대도 안 했지만, 내 연봉이 잘못 산정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뭐, 직접적으로 연봉이야기기 오갔던 것은 아니다. 다른 동료들의 이전 회사 경력들을 듣고 있자니 나와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문제였을 뿐. 나는 입사 전 연봉협상 때 내 총경력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IT 업계에서 일했던 경력만 인정이 된다고 하여 경력 일부만 인정을 받았던 것. 비록 콘텐츠가 IT 관련이지만, 교육회사이기에 경력이 모두 인정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라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연봉제안을 듣고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이렇게 낮추고 가야 할 것인가.. 고민이 들었다. 경력직인데 그 정도의 연봉제안을 한 거였으면 입사를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력인정이 안돼서 신입 기준으로 연봉 산정이 된 것이라고 하니 속상하지만 납득은 되어 결국 입사를 결정했었다. 


입사 전부터 연봉에 대해 어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동료들의 경력을 듣고 있자니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나보다 직급이 높았던 이는 직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던 경력도 있었고, IT업계에서 일했던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나만 인정이 안되었던 거지?라는 생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안내해 주었던 인사팀 과장님에게 바로 연락을 넣었다. 일단, 다른 이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나의 경력이 도대체 몇 년 인정이 되었는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제출했던 경력 증빙이 모두 인정되었다는 것.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런 게 바로 망치로 머리를 맞았다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력인정에 대한 부분을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과장님도 내심 귀찮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경력인정이 아니라 현재의 역량이라고 마무리 답신을 남겨주셨다. 음..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 현재의 역량이니깐. 그런데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경력에 따라 연봉 산정이 달리 된다는 것을. 그리고 더욱이 나는 경력인정이 안된다는 사유로 직급도 낮추고, 연봉도 낮추고 입사한 케이스인데 이런 말들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연봉 협상을 했던 인사팀 차장님에게 면담신청을 하였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하는 것보다는 얼굴을 마주하고 드려야 할 말일 것 같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상태로 말이다. 내가 얘기했던 말의 플로우는 대략 이렇다. 동료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오가다 이전 경력들을 알게 되었다 - 다른 동료들은 IT업계 경력이 아님에도 인정이 된 것 같아 000 과장님께 저의 경력인정에 대해 문의를 드렸었다 - 제 모든 경력이 인정되었다고 하는데, 연봉협상 때 했던 말과 상이하지 않은가? -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면담신청을 드리게 되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 아직 회사가 연봉테이블이 없다 보니 정량적인 수치가 아닌 정성적인 판단에 따라 연봉산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있는 인원들의 연봉과 비교하여 정성적으로 판단한 연봉이 나의 연봉이라는 것이었다. 즉, 경력과는 무관한 산출방식이었다는 점. 입사 전에 들었던 말과는 달랐다. 연봉이 말도 안 되게 적어서 재차 확인하였을 때는 경력인정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 IT 업계 경력이 없어 신입으로 책정되어 연봉이 적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그 말에 마음의 위로를 삼았건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체계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일단 내 선택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의 내 현실은 과거의 내 욕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니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지금의 회사를 선택할 때는 연봉이 낮더라도 오고 싶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1. 거리가 가까운 점 

2. 비록 돈은 내지만 구내식당이 있어 점심메뉴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점 

3. 비교적 자유롭게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을 수 있다는 점


연봉을 조금 낮추고서라도 오고 싶었던 이유가 분명 있었다. 저 때는 저 이유가 너무나도 탐이 났다. 연봉이 그때는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이전 회사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이라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로망을 현실로 이루게 되자 마주한 걸림돌이 이제는 큰 이슈로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 할 것인가. 입사 첫 주만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당장에 이직할 다른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작디작은 그 '월급'이란 녀석이 정말 소중했기에. 먹여 살릴 가정이 없는, 내 한 몸만 지탱하는 1인 가구도 월급에 퇴사 결심을 쉽사리 하지 못하거늘. 나보다 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가장의 무게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되었다.


과연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행복한가.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연봉 앞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어느 평범한 직장인의 머릿속 생각들이다. 이전 회사와의 연봉차이가 그리 큰 폭은 아니었어도 고정 지출비가 많은 나에게는 월 10~20만 원이 있고 없고는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 부분은 회사가 잘못했다고 본다. 입사 전과 후의 안내한 연봉산정 기준이 상이했으니깐. 어떻게 보면 '신뢰'가 깨져버린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경험도 버릴 것은 없다고 하던가. 이 경험을 통해 난 또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10~20만 원에 요동하는 나를 마주하며, 직장선택에 있어, 일에 있어, 돈에 있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답을 하루하루 찾아 나가게 되었다. 평탄한 나의 삶에 균열이 생김으로써 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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