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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uhm May 02. 2024

군대에서 만난 (입이) 거칠었던 예수

군대에서 만난 욕 잘하던 휴머니스트

군대에서 만나서 여전히 내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 선임이 한 명 있다. 그 선임은 나보다 2살이 많았고 나보다 6개월 선임이었던 형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군대는 좁디좁은 내무실에서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젊은 남자애들 수십 명이 개인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좁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각종 이기주의로 인해 다툼과 마찰이 자주 일어났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 남짓의 남자애들이다. 핸드폰 사용도 못하고 인터넷도 사용 못하는 시절이었다. 외출도 맘대로 못하고 휴가도 일 년에 며칠 갈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다. 그 안에서 갈등이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그 선임은 입과 행동은 다소 거칠었지만 마치 예수 같은 사람이었다. (그 형은 불교신자였음) 그는 항상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다. 모두가 싫어하는 일도 먼저 손을 들고 자원했으며 선임급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들도 본인이 맡아서 했다. 
청소나 각종 짐정리, 그리고 내무실 사람들의 빨래까지도(선임 후임 가릴 것 없이) 

특히 그 형은 입이 매우 거칠어서 욕도 걸쭉하게 진짜 잘했다. 문장의 시작을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마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속으로는 얼마나 정 많고 배려심이 깊은 "동료"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형이 전역할 때쯤 되었을 때였다. 그 형에게 물었다.

“형, 왜 그렇게 힘든 일만 도맡아서 했던 거야? 형 짬이면 안 해도 되잖아?”

이라고 하자. 그 형이 내게 하는 말이

“이 **새꺄. 친구끼리는 일 시키는 거 아니야. 다 같이 힘들게 군생활 하는데 짬이 어딨냐. 다 같이 친구고 가족이지. 겨우 짬 더 먹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내 손발이 멀쩡한데 뭐 하러 애들을 시켜?"


그래서 그 형이 전역할 때 참 많이 슬펐었다. 입은 거칠었어도 군대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사람다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선임에게서 난 예수를 느꼈다. 그는 교인도 아니었고 교회를 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는 예수님이 아주 오래전에 우리에게 남긴 말씀인 


12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5:12


를 삶에서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아닌 참 기독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참 의미는: 서로 존중하며, 아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미워하지 말며 개인의 존엄성과 복됨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며 형제, 자매이며 소중한 이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형은 삶에서 이러한 참 사랑의 의미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 형 하고는 제대하고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내가 미국에 온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그 형은 여전히 입이 거친 예수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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