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종교노동자 AKA 목사
미국 중부에서 전업종교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사실, 미국으로 유학 오던 당시에 내 계획은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목표로 하던 박사학위를 하는 것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종교노동자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감리교회의 파송(미국감리교회는 각 지역별로 연회라는 조직을 통해 각 교회에 목사를 파견하는 방식) 받아 현재는 미국 중부의 농촌지역에서 교회 2군데를 담임하고 있다. (형편이 안 되는 교회 2-3개를 묶어 한 명의 목사가 담당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목사는 풀타임 월급+혜택을 받을 수 있고 목회자 구하기 어려운 시골 교회는 다른 교회와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목회자를 파송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전업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을 얘기해 보자면,
1. 미국에서의 종교노동자의 노동강도는 한국보다는 확실히 노동강도가 덜하다. 아마 대부분의 미국직장들이 한국보다는 노동강도나 근무환경이 좀 더 나은 편이 많은 편이다. 이건 한국교회가 목사나 전도사에게 요구하는 노동조건이 워낙에 가학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덜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2. 한국 개신교회의 "사모" 개념이 없다. 내 배우자와 나 모두 일단 담임목사이고, 내 배우자 역시 교회 외에도 다른 일들을 추가로 하고 있어서 나보다 일이 더 많은 경우가 있다. 물론 "사모" 역할을 은근히 바라는 미국교회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애초에 그럴 일을 만들지 않았다. 이게 나에게 있어 전업종교노동자로 살아가는 조건 중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3. 새벽기도가 없다. 수요예배, 금요예배도 없다. 큰 교회들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기도도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담당하는 교회도 2군데여서 격주로 수요일에 기도모임하는 게 일단 전부다. 나머지는 부활절 전에나 크리스마스 전에 성경공부 인도하는 정도이고 이것도 주일에 했던 설교를 활용하거나 이미 나와있는 성경공부교재를 사용하면 되니 아주 힘들지는 않다.
4. 유급휴가를 최대 6주 정도 쓸 수 있다. 4주 휴가를 붙여서 한 번에 몰아서 쉬는 목사님들도 있는데 그건 보통 큰 교회 백인 남자 목사님들 얘기고, 난 아직까지는 주일 끼고 10일 정도 쉬었던 게 최대였다. 그래도 일 년에 3주 정도는 쓰려고 노력 중이다. 안 그러면 번아웃이 오기 쉬운 직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교회 생각하면 비교적 여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5. 사택이 제공된다. 미국에서는 이게 정말 큰 메리트이다. 아무리 집값 저렴한 미국 중부의 시골이라고 해도 집값은 굉장히 큰 부담이다. 괜찮은 아파트나 하우스 렌트하려면 월 $1,400-1,600 정도는 생각해야 하고 각종 전기, 수도 등등 생각하면 한 달에 집값까지 굉장히 큰돈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사택제공 + 유틸리티까지 지원받기 때문에 꽤 박봉인 목사 월급으로도 그냥저냥은 먹고살 수 있다. |
*다만, 이렇게 제공받는 사택 + 유틸리티 비용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사택이 있는 지역의 평균 월세 1년 치 + 유틸리티 비용을 합쳐서 세금을 내게 되어있다.
*미국은 목사들이 자영업으로 분류되어 세금을 납부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 와 개꿀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에게 전업종교노동자는, 특히 시골지역의 종교 노동자는 꽤 힘든 일이다. 이제 힘든 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1. 노동강도가 덜하다고는 해도, 목사는 목사다. 매주 영어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항상 큰 스트레스, 거기에 모국어가 아닌 말로 설교 및 교인관리, 상담, 행정을 하는 것은 영어가 익숙한 것과는 별개로 항상 큰 에너지 소모를 강요한다.
2. 시골교회 특성상,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악명 높은 미국의료보험체계 덕분에 한국처럼 꾸준한 건강검진을 받는 분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갑자기 큰 병이나 암에 걸려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교인을 병으로 잃는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3. 인종차별에 대처해야 한다. 대놓고 하는 차별이 아닌 문득문득 새어 나오는 인종차별적 단어라든가 뉘앙스에 대처해야 하는 법을 강제로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오 너 영어 너무 잘한다!"라든가. 이게 왜 인종차별이냐면, 난 이미 여기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어를 못하면 이상한 거라는 얘기.
그리고 설교 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면 못 알아들으시고 내 영어가 부족해서 못 알아 들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흘린다. 내가 싫어서 인종차별하는 것이 아닌 그게 인종차별인지 몰라서 그냥 하시는 말들을 걸러 들어야 하는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4. 미국 중부의 시골이다 보니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으려면 차로 6시간 반정도 떨어진 시카고까지는 가야 제대로 된 것을 먹을 수 있다.
5. 고립감. 애초에 아시안 인구가 희박한 동네이다 그래서 나와 나의 배우자는 "모두가 아는 그 집" 이 되었다. 때문에 아주 손쉽게 인종차별적 시선에 노출되기 쉽고 이로 인한 반작용으로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백인 마을에 고립된 아시안 부부" 느낌이랄까.
6. 모델 마이너리티의 압박감이 심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뭔가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백인남자목사들은 일 아주 열심히 안 해도 큰 교회 목사로 잘 가는 편이지만 우리는 뭔가 특출 난 퍼포먼스, 실적이 있어야 부목사로라도 가게 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종교노동자로서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에는 한국 혹은 한인이민교회의 환경보다는 좀 도 인간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