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써 내려가던 글에 온점을 찍었다.
책만 읽던 내가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서 샤프를 손에 쥐었던 것은 우연과 같았다. 이야기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이야기를 나도 써볼까? 했던 작은 호기심이 나의 운명과 같은 글쓰기의 시작점이었다.
첫 단어를 쓰고, 그 단어를 잇는 작업을 거쳐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은 수학 문제를 앞에 둔 것처럼 막막하기도 했지만, 나의 세상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나의 주인공들은 마법을 쓰기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하고, 나처럼 평범한 인물이기도 했다. 각자 다른 인생을 상상하고 써 내려가면서 백스페이스를 연타하는 일도 있었지만, 마지막 온점을 찍을 때 처음 느껴보는 행복을 불러일으켰다. 단어 하나에 설렘을, 문장 한 줄에 기쁨을 새겨 넣으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나만의 이야기였던 것은 곧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나에게만 즐거움을 주던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타인이 나의 마음에 공감해 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다. 그 기쁨이 커질수록 내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길어졌다. 하나의 분홍색만 봐도 부풀었던 마음이, 고작 50개도 모으지 못했을 때는 잔뜩 쪼그라들어 버렸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단어를 수십 번 반복하게 되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이야기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나의 동기가 되었다.
점차 내가 선택한 단어나 문장들은 다른 이의 것이 되어 버렸고, 내가 썼지만 내 글에 '나'는 남겨져 있지 않았다. 내 글은 나를 잃었으며 나는 내 행복을 잃었다. 이제 노트북을 열 때, 메모장을 열어 생각난 문장을 적을 때 내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는다. 내려간 마음만큼 멀어진 나의 글이 미워 보이기까지 했을 때 나는 글쓰기를 멈추었다.
'하트를 주세요.'
글의 말미를 꼬박꼬박 장식하던 비굴한 나의 마음이 정작 가장 중요한 나의 하트를 얻지 못하게 했다. 글에서 주인공은 울고 웃었으나 나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그가 사랑받고, 사랑하며 마음을 채울 동안 정작 나는 공허의 하트를 손에 들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이대로 내가 좋아해 마지 않던 글을 그만둬도 괜찮을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망설이다가도 결국 신청한 글쓰기 수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을 천천히, 느긋하게.
오늘도 새하얀 종이 위에 검은 점 하나 남겨보려 애쓰며 한참을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지만, 조금씩 차오르는 나의 하트를 언젠간 당당히 보여주고 싶다.
단 하나의 하트가 꽉꽉 채워진 나만의 글을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