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나는 인생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라면을 먹었다.
아빠에 이어 엄마도 내가 4살이 되던 해에 회사 생활을 시작하시며 우리 집은 점차 소리를 잃어갔다. 늘 함께 시간을 보내줬던 언니도 그 나이대의 필수 교양 코스였던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다양한 학원에 가기에 바빠졌다. 커다란 집에 남겨진 것은 나 혼자. 부러 TV를 틀어 고요를 소란으로 잠재우고 입꼬리를 애써 씰룩이는 것에 익숙해지던 시간이었다.
몇 시간이고 TV 앞에 앉아 마이너스 되는 시력을 모른 척하고 있다 보면 언니가 오고, 엄마가 오고, 또 아빠가 집에 들어왔다. 저녁 8시, 우리는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었다.
어린 나이에 기다림은 길거리에서 엄마의 손을 놓쳤을 때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엄마를 스스로 찾기 위해 움직이는 단절된 인내심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리고 일에 지친 부모님마저도 내심 내가 그러길 바라셨다.
내가 좀 더 자라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을 때, 부모님의 귀가는 더 늦어졌고 엄마가 준비해놓고 간 음식들을 혼자 꺼내 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밥을 먹어도 이상하게 배가 여전히 비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한 공백 때문인 것 같다고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배를 채우게 되면 그 허전함을 덜어낼 수 있을까 싶어 엄마에게 선언했다. "나 혼자 라면 끓여 먹을 거야!"
처음 끓이며 스프 봉지를 빠트리거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느새 붉게 물든 물이 이리저리 샛노란 면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제법 라면스러워졌을 때 이 정도면 혼자 처음 해본 것치고는 잘 만든 '요리'라고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젓가락 가득 면을 부여잡고 입안으로 삼...키다가 도로 앞접시에 뱉어내었다.
스프를 빠트렸던 것이 문제였을까?
엄마가 해주었던 매콤하고 맛있는 라면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 맛이었다. 결국 그 음식을 한 입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고, 엄마가 준비해 놓고 간 음식을 혼자 차려 먹을 의욕마저 사라졌다. 오랜만에 기다린 저녁 8시.
고슬고슬 물기를 머금은 밥,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연기 끝에서 새콤한 향을 과시하는 김치찌개, 흰색과 노란색의 절묘한 조합의 옷을 입고 있는 계란후라이. 식탁 위에는 오후에 내가 했던 요리와 다르게 각자 제 색, 제 향, 제맛을 고루 갖춘 음식들이 있었다.
"오늘은 왜 먼저 안 먹고-"
아빠의 밥상을 차릴 때 나도 같이 먹겠다고 말한 내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엄마에게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하시며 어떤 일이든 홀로 해내려고 노력하던 내게 처음으로 혼자여서 실패한 쓰디쓴 경험을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나는 몇 번이고 맛있는 라면을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고, 지금은 대충 끓여도 맛있는 라면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라면은 제맛을 찾았지만, 어쩐지 나는 여전히 9살에 먹었던 그 맛없는 라면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끊임없이 노력해서 내가 얻은 것이 고작 고개를 들어도 마주 웃을 사람 한 명 없는 라면 하나였기 때문이었을까. 덩그러니 올려진 라면을 보며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이런 제맛의 라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음식을 만든 나를 보며 기특해 하는 다정한 눈빛이나, 많지 않아도 오고 가는 대화 같은 것들. 결국 나의 제 형태의 라면은 우리 함께 라면이었던 것이다.
그날 끓인 라면을 9살 때처럼 싱크대에 쏟아 붓고 한참 식어가는 모습을 내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다음 주에 내려가도 돼?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