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희 외할머니께서 올해 90세로 영면하셨습니다.
이제는 다 커 버린 장성한 자식, 손주들은 이렇게 관혼상제 같은 큰 일이 있어야 한데 모이는 것 같습니다. 명절도 각자 꾸리고 있는 가족들끼리 보내느라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돌아가신 어머니/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모이고 얼굴 본다며 모두들 진심으로 감사해 했습니다.
그리고는 꽤나 분주한 3일을 보냈습니다. 사실 상을 당하면, 고인에 대한 슬픔과 애도는 조금 뒷일이지 않습니까. 장례를 치러야 하니까요. 장례식의 종류를 결정하고, 장례식장을 정하고, 와 주시는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부조금을 정산하고, 입관-발인-안치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이튿날 밤, 숨가쁜 조문객 맞이를 마무리하고 조의금을 정산하던 밤이었습니다. 이제야 한숨 돌리며 장례 과정을 돌이켜보던 제 머리를 번개처럼 스쳐가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 No one is perfect, 낙인과 혐오를 멈추어야 하는구나.
사실 가족들 만큼 서로의 별의 별 꼴을 다 보는 사이가 어디 있나요. 잘나가는 때, 못나가는 때도 보고, 서로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기도 하고... 자칫하면 한 순간의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재단하고 단정짓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 무의미하구나 싶었습니다.
큰삼촌께서는 장손이라고 외할머니가 번 돈을 사업한다며 가져가 홀랑 까먹어 다른 형제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사업하는 과정에서 넓혀진 인맥으로 장례식장을 하시는 분을 친구로 두어 정말 넓고 쾌적한 장례식장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촌오빠는 잘 하던 일을 때려치고 장가도 안 간다며 어른들의 걱정을 샀는데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경력을 바탕으로 조문객 맞이용 반찬과 음료수의 수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신없는 가운데 혹여 발주가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잘 단속하여 어른들이 든든해 하시며 한시름 마음을 놓으셨습니다.
그 밖에도 부부간 사이가 소원하여 가족행사에 쭈뼛쭈뼛 데면데면하던 이모부는 어른들께서 '자네 은행 다녔지 않냐'며 어서 이리와서 조의금 시재를 좀 맞춰보라며 부르시고, 역시 은행장 출신은 다르다며 다들 한바탕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게요. 시절의 어느 한 장면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한 면에만 숫자가 써 있는 주사위가 어디 있나요. 모든 것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여러 면이 있겠지요.
사실 이 생각을, 말을 일상에 내가 잘 실천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해 너무 부끄럽지만 계속 되뇌이기라도 하려고 다시금 써 봅니다. No one is perfect, 낙인과 혐오는 이제 그만.
p.s. 'No one is perfect'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상 깊게 본 <어둠 속으로>라는 작품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이 작품은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해가 뜨는 것을 피해 어둠 속으로 계속 가야 한다는 재난물인데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일이 있으면 자꾸 '대화'를 하는 것, 어디에도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신선한 울림을 받았습니다. 등장인물 중 그 누구하나도 완벽하지 않고, 결점을 가지고 있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이자 명대사 'No one is perfect'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