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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Sep 21. 2024

긴장 풀어요. 가족여행이라고요

가이드도 포기한 그는 여행 전문가

젊게만 느껴졌던 엄마가 벌써 칠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엄마는 가고 싶은 곳을 정하지 못했다. 가족 중에 제일 막내인 중학생 조카에게 어디 가고 싶은지 물었다. 단박에 세부라고 했다. 왜 가고 싶은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부란다. 귀여운 녀석이다. 자유여행으로 가면 그분이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될까 싶어 가족 모두 즐기자는 취지에서 패키지여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생네 가족 3명과 우리 가족 4명, 엄마까지 총 8명. 패키지의 묘미인 선택옵션으로 엄마와 아이들을 만족시키기로 합의했다. 


많지 않은 식구였지만 일정 맞추는 게 쉽지 않아 동생네와 엄마까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공항에서 만났다. 가족 모두 한껏 들떠 있었지만 누구도 티내지 않고 차분히 짐 부치고 특별히 문제 될 것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어린아이가 중학생이었으니 손 많이 가는 식구는 없었다. 유독 눈에 거슬리는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공항 도착하자마자 그분의 직업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순례객 인솔해서 나가는 가이드처럼 혼자 긴장하며 분주하게 굴었다. 딱히 누가 요구하는 것도 없는데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지 서성댔다. 뭔지 모를 어수선함이었다. 출국장 들어갈 때도 혼자 다급히 출국 스마트패스 라인으로 들어가며 “나와.”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난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늬이 아빠 왜 저런다니.”  

“엄마, 내가 아빠랑 이번에 성지순례 갔을 때 저렇게 예민해 가지고 맞춰주느라 엄청 고생했다니까.”


올해 1월, 2월 그분을 도와 성지순례를 다녀왔던 딸이 말했다. 우리를 바라보고 서있는 그분을 마주했다. 여행객이 되어 즐기길 바라며 패키지여행을 계획한 건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나와 아이들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장소인 공항이 그분에게는 일터, 예민 모드 작동되는 장소인 것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야간 비행으로 새벽 세부도착. 그분은 현지 가이드를 만나고 나서 여유로워졌다.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잠시 휴식 후 가이드와 미팅 시간. 3박 5일 동안 할 수 있는 체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호킹 투어, 다이빙투어, 제트보트, 나이트투어, 스파 마사지, 쇼핑투어 등의 옵션을 선택한 후 일정에 맞춰 움직였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엄마는 세부 전신마사지를 받은 날 꿀잠을 잤다며 행복해했다. 아이들과 함께 람보르기니급 제트보트에 몸을 실은 엄마는 쏟아지는 바닷물 세례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즐거워했다. 스노클링을 할 땐 물고기들에게 식빵 배식을 하느라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현지인도 이런 엄마 모습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풀장에서 기본 다이빙 강습을 마치고 바닷속 다이빙을 하던 날. 가장 고령이었던 엄마가 바닷속 다이빙을 할 수 있을까 걱정 됐다. 엄마는 씩씩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따라나섰다. 제부도 뒤를 이어 들어갔다. 수압 공포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던 옵션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부 모습이 보였다. 눈이 동그래져서 귀가 아프다고 손짓하며 말했다.


 “아우, 생각보다 귀가 아프고 못하겠어요. 어머님은 잘하시던데요.” 


제부는 오랜 운동으로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상 남자’ 이미지와는 다르게 못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오는 모습에 그분과 나는 제부 놀리기에 열을 올렸다. 다이빙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게 올라오는 우리 엄마. 물에서 하는 거 왜 이렇게 잘해? 전생에 해녀였을까?


엄마는 여행하는 동안 우리가 챙겨주거나 대접해 주길 바라지 않았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다녔고, 나이라는 장벽 뒤에 숨지 않고 아이들과 모든 체험을 함께 했다. 지 여사(엄마)의 모습에 아들도 한마디 했다. “우리 할머니 멋져.”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건 우리 엄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와 다르게 그분은 관리대상이었다. 세부 막탄 산토니뇨 성당에선 가장 열심히 말을 안 들었다. 귀 막고 단독 행동하기. 성당 내부 구석구석 살펴보고 성호 긋고 아멘하고 아주 바쁘게 답사 중이었다. 누가 성지순례 가이드 아니랄까 봐. 가족사진 찍자고 불러도 오지 않았다. 가이드도 “아버님은 포기.” 라며 그분은 예외로 대우해 주었다.


옵션의 꽃 쇼핑센터 방문. 여행 옵션의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분은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여행업 종사자의 가족 아닌가. 호객행위에 넘어가지 않고 지갑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입구부터 흔들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새침한 표정으로 눈을 아래로 깔았다. 태반크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무심한 듯 스쳤지만 고개는 계속 지나온 곳을 향해 돌아가 있었다. 마데카 비누, 비건 비타민, 혈당을 낮춰주는 당뇨 믹스커피, 알부민 등 하나하나 상품 설명을 듣고 ‘응, 안 살 거야.’하고 지나쳤지만 모든 상품은 이미 내손에 들려 있었다. 습자지 같이 얇은 귀와 호떡처럼 뒤집히는 내 마음의 결과물들이었다.


 나는 지출할 때마다 스스로 위안 삼아 말하곤 한다. ‘경제 살리는 일을 한 거야, 돈 쓰는 것을 두려워 말자.’라고. 세부 물가가 싸지 않다며 물가 탓을 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경제는 살리고 내가 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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