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D,〈The silent drama of photography 〉
C05. 변화시켜야 할 것을 변화시키는 사진 또는 카메라의 역할 – 세바스티앙 살가도 TED 영상, 〈The silent drama of photography | Sebastião Salgado〉(2013)
사진을 마주한 단독자 - 바로 나 자신
저는 이 영상에서 브라질의 사진작가인 세바스티앙 살가도가 자신의 작품을 청중에게 보여줄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가 자신의 사진 작품을 커다란 배경 스크린에 띄우고 청중이 그 사진을 보는 동안 그 사진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줄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대개의 강연이 그렇게 진행되니까요.
하지만 그는 청중이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사진을 볼 수도 있도록 몇 초 동안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고요한 정적 속에 그의 해상도 높은 흑백 사진 작품들은 입으로 내뱉는 언어가 아닌 사진만의 시각적 언어로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주 개인적으로’ 말을 거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잠시 뒤에 이어질 살가도의 말을 듣기에 앞서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은 잠시나마 온전한 침묵 속에서 그 사진을 단독자로 마주하고 일대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누리지 않았을까요.
살가도는 완전한 시각 매체인 사진을 잠시나마 온전히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의 강연을 들으려고 모여 있는 청중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극히 개인적으로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게 사진과 같은 시각 매체의 예술을 감상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 또는 가장 올바른 태도 아니겠습니까.
사진을 무엇보다도 우선 시각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감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정확할 수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고, 정확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별로 없는 무수한 수사적인 언사들로 이루어진 작품 설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나만의’ 감상을 방해할 뿐입니다.
살가도는 사진작가로서 바로 이것을 짧은 강연에서나마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온전히 진행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주어진 강연에서 청중들 각각을 사진과 일대일로 만나게 하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진의 존재 가치 – 예술의 민주주의
제가 보기에 살가도의 사진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표출하거나, 그 나름의 남다른 예술적 감식안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회를,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분명한 의도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그가 강연 맨 마지막에 보여준 사진이 8년간에 걸친 줄기찬 노력으로 황무지를 울창한 숲으로 만드는 데 실제로 성공한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제 가슴속에서는 장 지오노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프레데릭 백의 〈나무를 심는 사람〉(1987)의 시각적 감동이 되살아났습니다.
살가도가 그 사진을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우리가 사진의 역할에 대해서, 또는 사진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아마 사진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 살가도의 사진 철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세상을 위해, 이 지구를 위해 아무것도, 그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도대체 사진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이 지점에서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은,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봄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든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도 분명하지만, 나 자신이 사진을 ‘찍음으로써’ 스스로 변화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보면서도 변화하고, 찍으면서도 변화한다―.
이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감상하는(보는) 쪽으로든, 창작하는(찍는) 쪽으로든 기술적으로, 또는 교육적으로 카메라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매체인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찍는다’라는 능동적인 행위의 수월함이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필름 카메라든, 디지털카메라든, 스마트폰의 내장 카메라든, 손에 카메라를 드는 순간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바이올린을 손에 든다고 누구나 바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며,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앉는다고 누구나 바로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카메라를 손에 드는 순간에는 누구나 나름의 개성 있는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사진의 위대한 점 아닐까요. 어쩌면 글쓰기보다도요.
이런 점에서 예술의 민주주의가 거의 온전하게 이루어진 유일한 매체가 바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