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81
CA901. 자크 오디아르, 〈에밀리아 페레즈〉(2024)
트랜스젠더, 신분 세탁, 불법 시술, 연대, 보은(報恩), 범죄, 학살, 시신 유기, 혁명, 멜로, 치정극, 복수극, 나아가 대참사의 비극과 대안 가족. 그리고 이 모두를 관통하는 뮤지컬. 사랑은 그 모든 변화와 난장판 속에서도 오롯하다는 것. 사랑이야말로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의 비책이라는 것. 이 상투적인 해결책이 새삼 서늘하다.
CA902. 다니엘 에스피노사, 〈라이프〉(2017)
그 정체불명인 우주의 생명체는 정확히 어느 순간에 인간한테 적대감을 지니게 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적대감을 자기 DNA로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 적대감은 이 경우 생존본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걸까.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인 미란다(레베카 퍼거슨)는 고백한다. 그 생명체한테서 증오가 느껴진다고. 그것이 생명체 고유의 타고난 생존의 의지 또는 본능인지, 아니면, 지극히 인간적인 증오의 감정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그 생명체한테서 증오를 느낀다는 것이 문제다. 그 순간 생존본능에 충실히 행동하는 그 생명체와 그 생명체한테서 증오를 느끼는 인간 사이의 충돌은 오로지 인간한테만 이성적으로나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지극히 괴로운 일이 되고 만다. 증오를 느끼는 순간 이미 인간은 그 생명체한테 진 것이다. 이 영화의 가공할 만한 결말은 이 승패의 지극히 기계적인 적용의 결과일 뿐이다.
CA903. 배창호, 〈정(情)〉(2000)
한국영화의 걸작을 찾을 때는 김기영이나 유현목부터 시작하여 봉준호까지 내려오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고르라면 나는 단연 배창호를 꼽겠다.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정〉은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천국의 계단〉(1992)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창호의 영화다. 누가 나한테 그 이유를 물어온다면 배창호의 영화들에 관한 한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그냥 좋아.” 아니, 달리 답하고 싶지가 않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한 태도겠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행복한 느낌이 드는 매우 드문 사례가 바로 배창호의 영화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김유미와 윤유선―.
CA904. 카시 레몬즈, 〈휘트니 휴스턴: 댄스 위드 섬바디〉(2022)
이 영화의 주제는 두 마디 대사로 대변할 수 있다. “흑인 여자들은 다 지쳐 있어요.” “애가 온갖 걸 다 보잖아요.” 그녀가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녀가 누린 것과 빼앗긴 것. 그녀는 미국에서 흑인 여자들이 처해 있는 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로 그 자리가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딸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 자리는 그녀 딸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의 자리와 그녀 딸의 자리―. 그래도 예술은 길고 위대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예술을 했고, 예술가였다. 그래서 그 자리는 없어질지라도 그녀는, 그녀의 예술은, 그녀의 노래는 아주아주 오래오래 존속할 것이다.
CA905.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2003)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절대 명제였다. 그렇게 받아들여져 왔고,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 정당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지구에 사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지구를 지켜야 하는 걸까. 지켜야 할 만큼 지구는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지구는 희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미련 없이, 가차 없이 끝장내버린다. 실은 지구를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구를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비로소 유의미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