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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92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92

by 김정수

CA956. 왕가위, 〈아비정전〉(1990)

왕가위의 영화들 가운데서 가장 아프고,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쓸쓸한 영화.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의 가공할 만한 협연. 그리고 양조위의 존재감. 그 배우들의 각기 다른 개성이 뿜어내는 아우라의 일대 향연.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그의 춤, 또는 춤사위. 한데, 이 영화 속에서 계속 비가 내리는 까닭은? 아마도 주인공의 외로움을 위로하려는 감독의 ‘자상한’ 배려가 아닐까. 감독이 등장인물들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고는 내리게 할 수 없는 따뜻한 위안의 비―.


CA957. 미조구치 겐지, 〈오하루의 일생〉(1952)

다나카 기누요 연기의 정점. 다나카 기누요는 이 영화에서 그만의 어떤 ‘몸가짐’을 완성했다. 이에 견줄 만한 사례는 아마도 〈만춘〉(1949, 오즈 야스지로)의 하라 세츠코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극한까지 밀어붙인 비극의 품격―.


CA958.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1950)

6·25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고전 걸작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 앞에서 느껴지는 착잡함과 아이러니. 황금사자상 중의 황금사자상. 구로사와 아키라의 첫 세계적 걸작. 하나의 사건, 다섯 가지의 시각, 증언, 생각, 진술, 입장, 또는 변명. 다양하고 복잡하고 입체적인 조망의 기술. 미후네 도시로의 발견―.


CA959. 구로사와 아키라, 〈이키루〉(1952)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또는 명작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위대한 영화를 꼽으라면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도스토예프스키스러운, 문제적이면서도 위대한 인간형, 위대한 서사, 또는 위대한 최후, 나아가 위대한 노력. 이 영화에서 시무라 다카시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무라 다카시의 발견, 또는 재발견, 또는 재인식―.


CA960. 버나드 로즈, 〈불멸의 연인〉(1994)

베토벤 관련 영화들 가운데서 선곡과 출연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 특히 베토벤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의 핵심을 찌르는 감동. 아버지한테서 거의 학대에 가까운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도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음악을 향한 타고난 깊은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이겨나가는 어린 베토벤의 모습에서는 뒷날 명실상부한 악성(樂聖)의 싹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엿볼 수 있도록 묘사한 감독의 솜씨, 또는 마음, 또는 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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