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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goB Oct 17. 2024

태어나보니 흥부네 셋째 딸

우리 아빠 좀 말려줘 4화

눈앞 사위가 어두컴컴하다. 늦은 밤인가. 주변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함을 더욱 고요하게 한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살펴본다. 어슴푸레한 형체가 보일 듯 말 듯하다. 손을 앞으로 뻗어 아무렇게나 허우적댄다. 코 주변으로 비릿한 물 냄새가 어른거린다. 스멀스멀 피어오른 밤안개로 뒤덮인 개울 물이 천천히 흐를 때 나는 물 비린내. 등 뒤로 전해오는 습기를 머금은 풀과 흙의 촉감. 아마도 나는 땅에 똑바로 누워 있던 자세로 지금 막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빠져버린 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신을 잃었던 순간만이 조각난 파편처럼 떠오른다. 아마 그는 벌써 저만큼이나 갔겠지. 분명 그를 앞세워 잘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일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번쩍하는 섬광이 보였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갑자기 목이 마르다. 몸을 옆으로 돌려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마치 땅바닥이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무겁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그쪽 방향을 향해 몸을 곧추세워 일어선다. 귀를 쫑긋 세우고 더듬더듬 발걸음을 내디딘다.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물가에 도착하자 여태껏 어두웠던 시야가 일순간 밝아진다. 안개가 나지막이 깔린 물 위로 비늘 같은 잔 물결이 반짝거리며 주변을 밝힌다. 어디선가 흥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여인이 벗은 채로 물속에 있다. 그녀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노랠 부르며 팔과 목덜미에 물을 얹고 몸을 씻는다. 여인을 본 순간부터 난 이상하리만치 심한 갈증을 느낀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어 물로 뛰어든다. 머리까지 잠기도록 물속으로 들어간다. 입으로 코로, 귓구멍까지 물이 밀려 들어온다. 물을 마신다기 보다 내 몸이 물처럼 변하는 것 같다. 그러다 알 수 없이 환하고 하얀빛이 내 주변을 감싼다. 너무 눈이 부셔 눈살찌푸린다. 물속 아래 잠긴 여인의 상체와 팔다리가 보인다. 그녀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 몸이 나도 모르게 여인의 배와 엉덩이, 다리 쪽으로 빨려든다.




이건 어쩌지 못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에 사로잡혀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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