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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goB Oct 26. 2024

태어나보니 흥부네 셋째 딸

우리 아빠 좀 말려줘 5화

아버지의 아침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간 지 오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기막혀 죽겠다는 표정으로 금세 방문을 열고 나왔다. 치마 앞에 두른 천에다 손을 슥슥 닦으며 방문을 향해 냅다 소리치는 어머니.


- 그깟 제비가 뭣이 대단허다고 곡기까지 끊고, 돈 버는데 그리 열성이면 을매나 좋을꼬!


봉당마루에 차린 밥상에 삥 둘러앉아 아침을 먹던 식구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어머니를 향해 고갤 돌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고 바삐 내 몫의 풀죽을 먹었다. 사실 난 아버지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흘 전부터 갑자기 사라진 제비를 나 또한 걱정하고 있었다. 처마 밑에서 지낸 지 열흘이 막 지났을 즈음에 아직 다 낫지도 않은 제비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 만약 아버지에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죽을 게 뻔했던 제비. 아버지가 마을 사람에게서 얻은 고약을 제비 다리에 발라주면서 정성껏 돌보는 걸 보고, 덩달아 나도 제비를 챙기게 되었다. 난 보잘것없는 작은 목숨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의 착한 마음이 참말로 좋았다. 그런데 제비가 없어졌다.


- 기껏 살려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그니까 아부지는 그런 걸 괜히 집으로... 처음부터 잡아먹었으면 우리 식구 배라도 채웠잖아여.

- 오라버니, 그 쬐깐한 새 한 마리로 무슨 배를 채워여? 제비가 이제 살만하다 싶으니 날아간 거겠지.


화가 난 어머니를 보며 큰 오빠와 큰 언니가 위로랍시고 한 마디씩 건넸다. 둘째 언니가 나서서 밥상 앞으로 어머니를 앉히고 숟가락을 들어 어머니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 엄니, 얼른 아침밥 잡숴요. 아부진 나중에라도 시장하시믄 드시겄져.

- 며칠 지나믄 곧 집에 끼니가 다 떨어져 가는 판국에 저, 저 양반이 내 복장을 뒤집네. 아휴!


연신 숟가락으로 빈 죽 그릇을 박박 긁고 있던 동생들이 어머니 눈치를 보며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남동생 둘과 함께 산에 갈 준비를 했다. 약초를 캐서 담을 광주리와 호미를 챙기고 남동생들이 나무 지게를 지도록 했다. 내일 저잣거리 장에 내다 팔아 끼닛거리로 바꿔 올 계획이었다. 어머니와 작은 오빠, 언니들은 남의 밭에 나가 품을 팔 채비를 했다.


둘째인 큰 오빠는 글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이미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큰 오빠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항상 의문스러웠다. 어머니는 큰 오빠가 '비록 가난하나 양반 가문 맏아들로서 학문에 매진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넓은 땅과 기와집은커녕 달랑 낡은 초가집 하나에 열네 명 식구들이 비좁게 살고 있는데, 과연 양반이라 할 수 있나. 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 시험을 보러 갈 여비도 없으면서, 당장 끼닛거리를 걱정하는 형편에 글공부가 웬 말인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혼인하고 큰 언니를 낳을 때만 해도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옛날, 내가 엄마 뱃속에 있지도 않았을 시절에 아버지는 과거시험 보기 위해 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챙겨서 하인까지 한 명 데리고 한양으로 떠났다. 세상물정 몰라 어리숙하고 순진한 우리 아버지. 아, 글쎄 막상 한양에 도착해선 아첨하는 투전꾼들에게 홀딱 속아 속고쟁이까지 홀랑 털린 채로 상거지가 되어 삼 년 만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올 여비가 없어 이 집, 저 집 동냥해서 빌어 먹으면서, 막상 돌아오자니 어머니 볼 면목이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은 갈 데가 없어서 돌아왔단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가 무슨 변고라도 당했는지 걱정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며 기도하면서 지냈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길바닥에서 생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방바닥에 누워 있는 게 부지기수였다.


일러스트 출처 - Pixabay


그때부터 우리 집은... 돈과 쌀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이상하게도 아기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태어났다.


일러스트 출처 - Pixabay


하는 없이 어머니가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수밖에 없었고, 언니가 차츰 커가면서 어머니와 함께 가장의 무게를 분담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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