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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Oct 17. 2019

낙천주의자들의 나라 그리스의 첫 인상

환한 아이의 웃음으로 환영하는 그리스



환한 아이의 웃음으로 환영하는 그리스 

 경유지 도하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어느새 아테네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읽고 있던 하루키의 단편집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봤다.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깊고 진한 바다가 아래에 놓여 있었다. 아테네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두 손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를 그리스라는 미지의 모험을 앞둔 그리스 영웅이라도 된 심정이었다. 


나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동행할 하루키의 단편집 '빵가게 습격 사건'. 우연의 일치일까. 이 책에 수록된 단편중 그리스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번 여행이 일주일 조금 넘는 여행 기간동안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비롯해 산토리니, 크레타, 미코노스의 세 섬을 둘러봐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빠듯한 여행 일정 덕분에 대략적인 여행 동선만 짰을 뿐 비행기와 숙소도 전혀 끊지 못했고 오직 첫 날 묵을 아테네의 숙소만 예약되어 있을 뿐이었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갈 때 워낙 변수가 많아 비행기나 배 편을 전혀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섬을 오가는 동안 25키로에 육박하는 큰 케리어의 짐들을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더러 혹여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무리한 여행 일정이 과한 욕심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책망 마져 들었다.  


 떠나기전 들춰본 하루키의 에세이집 ‘먼 북소리’ 에 묘사된 그리스의 묘사 또한 내 근심을 더해주었다. 이 에세이는 하루키가 소설 상실의 시대를 쓰며 미코노스에 있는 동안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그 책에서 하루키는 그리스인들을 시간표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것을 넘어 버스를 운전사는 운행 도중 동네 친구를 만나면 멈춰 수다를 떨거나 심지어 승객들은 개의치 않고 포도주를 들이키는 대책없는 낙천주의자로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그리스에 대한 설렘보다는 섬과 섬을 오가는 가뜩이나 무리인 일정 속에서 이런 그리스인들의 대책없는 낙천주의 때문에 평생에 다시 한번 와보지 못할 그리스 여행을 망치게 되진 않을까의 염려가 매우 컸던 것이다. 


도하를 거쳐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 안.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에게해의 바다가 무섭기까지 하다



 기내는 어느덧 하차 하려는 승객들의 줄로 꽉 들어 찼다. 다른 승객들을 따라 줄줄이 비행기의 출입구를 나갔다. 공항으로 연결되는 환승통로의 밖으로 펼쳐진 그리스의 모습은 나의 예상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차창을 통해 마주한 그리스의 모습은 아테네의 따뜻한 햇살이 마치 아이를 품은 엄마의 품 처럼 아테네의 온 대지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테네의 도심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도 빠른 방법인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은 나를 벌써부터 여행에서 지치게 만들었다. 우려했던것처럼 아니나다를까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르게 공항과 지하철을 연결하는 통로는 불편하게 서로 이어져 있지 않아 한참을 돌아 가야 했다. 또한 역과 정거장 사이에는 엘레베이터 조차 없는 1층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큰 짐을 끙끙대며 아래로 향해야 했다. 여행의 첫 시작부터 난항의 연속인 것이다. 있는 힘 없는 힘 다해 무거운 짐을 끙끙대며 아래로 갖고 내려갔다. 섬을 세 번이나 오갈 동안 나는 이런 고통을 계속해서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내로 갈 열차를 기다리며 지하철 플랫폼에서 바라본 아테네 공항 역의 모습


시가지로 갈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의 경직된 마음을 녹여준 것은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의 환한 미소였다. 아이는 그리스를 대표로 내게 말을 건내듯이 환한 미소였다. 불안에 있던 나에겐 그 미소가 그리스의 모든 신들이 내게 축복을 내리듯 따듯한 미소처럼 보였다. 그런 사소한 고민들은 그리스의 신들에게 맡기라는 듯한 따듯한 미소였다. 아이의 환한 미소와 마주치니 모든 걱정이 혹시 내가 성급하게 만들어낸 기우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모든 것은 운명처럼 정해져있을진데, 우주의 먼지같은 내가 일희일비하며 고민해봤자 해결될 것이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깨달음을 우습게도 깨달은 것이다. 


그리스를 대표해 나에게 환영인사를 해준 아이의 미소


 조금 뒤 열차가 도착하고 아이의 부모와 나는 함께 지하철을 탔다. 무거운 짐가방을 옆자리에 놓고 창 밖을 보며 아테네의 중심지로 향했다. 지하철의 창을 통해 영영 지지 않을 것만 같이 반짝이는 아테네의 햇살이 전철의 벽돌이며, 지붕들을비추며 부셔지고 있었다. 아이의 웃음, 그리스의 햇살, 온화한 날씨 모든 것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는데 정작 나만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조금씩 추스리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그리스라는 곳의 대장정을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다.


아테네 중심지로 향하는 열차 밖 풍경. 내 눈에 들어온 첫 그리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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