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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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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Jan 26. 2020

엄마의 생일선물로 소파를 샀다

월급이 조금 올랐고 작년에 부모님께 갚던 부채가 청산되니 수입에 여웃돈이 생겼다. 2월엔 가족 여행에 썼고 3월엔 깜박한 엄마 생일선물로 집 소파를 샀다. 엄마는 큰돈이라며 한사코 거절하려 했지만 어차피 이러니 저러니 나갈 돈을 의미 있게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어갈 때 즈음 동생이 막 군대에서 재대하고 나는 장기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결국 정직원이 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은 선생님인 엄마밖에 없었다. 이 이야길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며 우스갯소리처럼 내뱉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필사적이었다. 나는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큰 회사에서 큰돈 받으며 일 하기를 꿈꿨고, 동생은 평생 연이 없던 장학금을 받으려고 꽤나 노력했고, 아빠는 그 당시 맡은 새로운 직책에 최선을 다했다. 지푸라기 같은 얇고 연약한 가능성도 아빠는 예의 그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때만큼 가족이 돈독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기점으로 우리 집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둔감한 동생과 엄마는 별 신경 안 쓰겠지만 나는 그 바뀐 공기의 기운이 참으로 서글펐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겪는 당연한 삶의 과정이었겠지만 나는 미처 생각지 못한 생의 모든 것들의 유한성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갖게 되었다. 하면 된다는 아빠의 긍정적인 삶의 가르침에 나는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생각과 함께 ‘개인의 노력을 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치를 부리던 소비를 급히 줄여야 했고 더 이상 부잣집 딸내미처럼 철 없이 행동하면 안 되는 순간을 맞닥뜨려야 했었다. 
재정적 여유가 있고 없고의 차이보다 사람을 더 궁핍하게 하는 것은 애써 있는 척해야 하는 그 애처로움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됐다.

우리 집의 헤진 소파는 그 이후로 그렇게 십 년 가까이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집의 정체성이었다. 경제적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릴 만큼의 처절함은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소파 카탈로그를 뒤적거릴 만큼의 소비생활을 예전처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어제 그 소파를 배달받고 엄마는 예전의 그 헤진 소파를 버렸다고 했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주황빛 인조 가죽이 덧씌워진, 그마저도 사람 손이 많이 닿던 모소리 부분은 모조리 벗겨져 흰 천을 내보이던 누더기 같은 소파를.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때론 너무 어렵게 대하곤 한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힘든 것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훌륭하고 또한 돈이 없는 사람은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때로는 애써 돈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애써 무시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도 한다. 



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다 틀린 말 같기도 하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돈이 있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여유로움이 있으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조금은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전적 여유를 자랑하는 사람도 꼴불견이지만 부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실력이 아닌 부만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더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부를 맹목적으로 쫓는 사람보다 더 추한 사람은 그런 자들을 동경하며 그 무리에 필사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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