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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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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Jan 26. 2020

도시의 냄새는 우울을 품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열차에서 내리자 비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냄새였다. 

물에 젖은 콘크리트에서만 날 수 있는 비 냄새. 

나는 그것을 도시의 냄새라 부른다. 


부산 여행에선 비 한번 내리지 않고 맑은 하늘이 이어졌다. 

여행 첫날은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관통하고 있었는데 내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태풍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화창했다. 


그런 내가 다시 서울에 오자 거짓말처럼 날씨는 도시의 기운을 내비추고 있는 것이다. 


가장 늦은 시간의 열차를 탄 탓에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차창 밖으로 길쭉길쭉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부산도 대도시라 서울과 전혀 다른 느낌은 아니었지만, 내 머리는 간사하게도 벌써 서울의 풍경에 맞춰 주파수를 서울에 맞추고 있었다. 

부산에 있을 땐 잊고 있었던 회사의 일들, 보내야 하는 메일들. 작성해야 하는 제안서.

또다시 나를 괴롭히기위해 덤벼들 회사에서의 크고 작은 갈등. 

나 혼자 외딴 섬이 된 것 같다고 느끼던 묘한 소외감.  


그런 것들이 도시의 냄새에 맞춰 다시 스멀스멀 내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단 세시간 열차를 타고 이동했을 뿐인데

그저 부산에 다녀왔을 뿐인데

서울과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 만으로 서울에서 만든 안좋은 기억들, 상처들, 스트레스를 사 일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다시 서울에 오자 떨쳐냈다고 생각했던 음습한 기억들은 다시금 나를 파고드는 것이다. 


서울이란 그런 것이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다시 그 바쁜 리듬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고작 사흘간의 떠남은 잠깐의 환기였을 뿐 명확한 해답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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