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Montreux, Switzeland

by 유희권

1989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899-1977)의 아들인 드미트리 나보코프(1934-2012)가 저자가 일하고 있는 뉴욕 공립도서관에 방문했다. 이유는 아버지의 유물을 도서관에 팔기 위해서였다. 그 후 도서관의 버그 컬렉션의 큐레이터인 로드니 필립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말년을 보냈고 그의 유물이 남아있는 스위스의 몽트뢰 (Montreux, Switzerland)로 두 번이나 방문했고, 결국은 그의 모든 유물과 유작을 사들였고 지금은 그 자료들이 도서관에 소장되었다. 따라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연구하기 위해선 뉴욕 공립도서관에 반드시 와야 된다. 도서관의 러시아 컬렉션의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나로선 무척 구금했다. 왜 나보코프는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고 그 땅에 묻혔는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인 상뜨 빼째르부르그에서 1899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러시아어,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배워 유창하게 3개 국어를 구사했다. 1917년 2월 혁명이 시작함과 동시에 나보코프와 그의 가족은 크림반도로 떠나 지인 소유의 사유지에서 18개월을 지냈고 그 후 잠시 영국에 거주했으며, 이때 나보코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해 로맨스어군 와 슬라브어파를 공부했다. 1923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 베를린으로 이사했으며, 소설가 겸 시인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고 유대계 러시아인인 베라 슬로빈 (1902-1991)과 1925년에 결혼한 후 1940년 미국 뉴욕으로 망명했다. 저자가 일하는 뉴욕공립도서관에 잡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무산되었지만, 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웰슬리 칼리지에서 (Wellesley College (1941–1948) 강사로 그 후에 코넬 대학에서 (Cornell University (1948–1959) 정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다. 나보코프는 1957년 ‘롤리타’ (Lorita, 1957) 란 소설을 출판하면서 일약 세계적 명성과 부를 거머쥐게 되었고 이는 그를 일찍 은퇴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보코프는 1961년에 스위스의 몽트뢰로 이주하였고, 1977년에 그곳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작품 활동과 나비 채집을 하면 삶을 영위하였다.


2019년 5월 필자가 스위스 몽트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보코프가 묵었던 호텔 (Fairmont Le Montreux Palace) 6층 스위트룸으로 찾아가 보았다. 나는 마치 나보코프의 숨겨진 비밀을 들어볼 수 있을 것처럼 긴장되었고 흥분되었던 순간이었다.

호텔 로비로 돌아와서 호텔 매니저랑 나눈 대화중, 이 호텔을 찾는 러시안들이 묻는 질문이 그 많은 나보코프의 유작과 자료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렇지만 어디로 간지 몰라 난처해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 자료들은 모두 제가 일하고 있는 뉴욕공립도서관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니, 그 매니저는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제부터는 관광객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해 줄 수 있게 되었다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왜 나보코프는 이곳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나보코프의 전기 작가는 아마도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 전 살았던 고향을 그리워하여 고향과 흡사한 이곳 스위스의 몽트뢰를 그의 마지막 장소로 택하지 않았을까라고 썼다. 하나, 나보코프는 호텔 뒤에 자리한 천연의 알프스 산맥이 지척지간에 있고, 앞에는 르망 호수가 (Lake Geneva)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으며, 마을을 휘감고 도는 꽃길(Chemin Fleuri) 위에는 야자수가 심어져 있는 이 지상 낙원을 아마도 사랑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 공립도서관) at Fifth Avenue, New York City

나보코프가 17년간 지낸 몽트뢰 그랜드 호텔의 6층 복도에 걸려있는 사진과 문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