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표정을 한 아저씨가 물리치료실로 걸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나는 살짝 긴장했다.
‘이분은 어떤 분이려나…’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원장님이 환자에게 처방한 물리치료 종류를 확인했다.
‘충격파 치료가 있네. 이거 먼저 해야겠다.’
“충격파 치료 먼저 하러 가실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무 대답 없는 아저씨를 데리고 나는 충격파실로 들어갔다.
충격파 치료는 염증을 치료하거나 석회를 깨는 치료로, 엄청나게 아프다.
‘선인장을 피부에 문지르는 거 같아요.’ ‘송곳으로 살을 파는 거 같아요.’ 등등 환자들은 그 고통에 대해 다양한 리뷰를 남긴다.
그렇게 아픈 만큼 치료 효과는 좋다. 우리 병원 물리치료사들은 점심시간이면 아픈 부위에 스스로 충격파를 치느라 바빴다.
충격파는 매우 아픈 치료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충격파 치료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아저씨의 이 한마디에 나는 경상도를 느꼈다. 나는 고향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워했다.
“어머, 경상도분이세요?”
경상도 단어가 나오자, 아저씨의 굳어있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어릴 때 경상도 살았거든요. 사투리 쓰셔서 알았어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아저씨는 긴장이 풀린 듯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나는 이어서 치료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치료하기 편한 자세로 아저씨를 베드에 눕게 했다.
나는 망치처럼 생긴 충격파 기계를 손으로 잡았고, 탕-탕-탕- 하는 충격파 소리와 함께 치료를 시작했다.
“아이고, 으…. 거기 엄청 아프네.”
“그죠. 많이 아프시죠. 아파야 잘 받고 있는 거예요. 근데 오늘 아침 뭐 드셨어요?”
내가 이렇게 뜬금없이 아침 메뉴를 물어보면 환자는 아픈 걸 잊어버리고 “아침에 뭐 먹었더라?” 하며 생각한다. 아침 메뉴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의 수다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아저씨와 한참 떠들다 보니 치료가 끝났다.
아저씨는 덕분에 치료 잘 받았다며 나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아저씨가 내 손에 쥐여주고 간 명함은 한 청소업체의 명함이었다.
‘아, 나중에 청소할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건가 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 명함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며칠 후,
그날은 아마 그 아저씨를 내가 세 번째 치료했던 날이었다.
평소처럼 나는 아저씨와 수다를 떨며 충격파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근데 명함 줬는데 왜 연락 안 해?”
“네?”
‘아직 청소할 일 없는데? 내가 연락을 왜 하지?’
“나랑 데이트 하자. 맛있는 거 사줄게. 내가 저기 소고기 맛있는 식당 알아.”
‘뭐야? 미쳤나. 뭘 하자고?’
“네? 하하 아니요.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말고 번호 좀 알려줘 봐. 여기 찍어줘”
아저씨는 핸드폰을 나한테 들이밀며 재촉한다.
‘주책이네. 이 아저씨. 진짜 왜 이래?’
“안 돼요~ 하하. 저 원장님한테 혼나요~”
이런, 핑계를 대도 원장님 핑계라니…
나는 이때 정색하고 화내지 않았던 걸 아직도 후회한다.
나는 이 일이 다시 생각날 때마다 ‘어휴, 이 바보! 정색하고 화냈어야지!’ 하며 가슴을 퍽퍽 친다.
“원장님한테는 비밀로 하면 되지~ 젊을 때 즐겨야지!”
‘내가 젊은데 왜 아저씨가 즐겨요?!’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아저씨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나는 충격파 강도를 슬쩍 올렸다.
“아이고! 거기 너무 아파. 얼른 번호 찍어줘 봐.”
“안 돼요~”
대단하다. 대단해. 아저씨는 아픈 와중에도 내 전화번호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얼렁뚱땅 치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서 남자 선생님에게 SOS를 쳤다.
“선생님, 저 안에 계신 분 다음 치료 좀 해주세요. 이따가 설명할게요.”
“응? 알겠어요.”
그 이후로 나는 병원에서 아저씨가 보이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내가 겪은 일을 아는 선생님들은 아저씨와 마주치지 않게 도와주셨다.
“쌤, 환자랑 잘 지내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거리 두는 게 좋아요. 괜히 상처받아요.”
내가 병원에서 많이 의지했던 선생님이 말하셨다. 아마 선생님도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게 서툴렀던 나는 환자와의 관계에서의 그 ‘적당히’가 참 애매모호하고 어려웠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그 적당한 거리를 조금은 알 거 같다.
하지만 환자와 지내다 보면 나는 단칼에 무 자르듯이 거리 두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그 ‘적당히’를 넘어가면 누가 사이렌이라도 울려줬으면 좋겠다.
‘애애앵- 거리 유지하세요! 가깝습니다! 멀어지세요! 삐뽀 삐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