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편지
수야, 잘 지내니?
오랜만에 이렇게 편지를 써본다. 아니, 너한테 사실은 편지를 처음 쓰는 것 같다.
편지를 좋아한다고 "다음 내 생일에 편지줄 땐~ 열 장 써줘! 나 다 읽을 거니까! 꼭!" 그렇게 입꼬리가 눈에 닿을 만큼 크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었지.
내가 말했든가. 너의 그 유쾌하게 웃는 모습은 모든 걸 잊게 만든다고. 너와 있을 때 내 힘듦은 고작 소나기 같았다. 종일 우중충하던 내 하루가, 네 웃음소리 한 번이면 우습게도 곧바로 날이 개어버렸다. 그날 나는 그 웃음을 평생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어.
넌 내게 햇살이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지 얼마 채 되지 않아 너는 내 곁을 떠났다. 이건 반칙 아니야? 그날, 내 눈앞에 너는 웃는 것을 잊어버린 듯 차가운 얼굴로 날 맞이했잖아. 이제 보기 싫다고, 연락하지 말라고 그렇게 비수가 가득한 말로 마음을 밟았다. 웃는 모습만 보고 싶었는데.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 맞는 듯해. 아니, 맞다. 네가 한 번을 안 돌아보잖아. 눈도 못 마주치잖아.
그 모습은 내가 널 붙잡지도 못하게 했다. "좋은 인연 만나길 바랄게" 그 말은 원래 이리도 아픈 말인가. 아니면, 고맙다고 좋아해야 해?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건,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난 네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 일상을 네가 아니면 공유할 생각도, 자신도 없다.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까먹은 거야?"라는 말에 대답하지 못해 미안해.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 편지를 열 장, 스무 장을 안겨주며 널 품에 안았을 텐데. 난 이 날을 평생 후회하고, 원망하겠지.
수야, 근데 네 이름이 원래 쓰는 데 이렇게나 오래 걸렸든가? 내가 편지 쓰는 게 처음이라, 하나도 모르겠어. 이해가 안 된다. 금방 써 내려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이름 쓰는 것만 한 시간이 걸렸어.
내가 너무 꾹꾹 눌러썼나? 이름 하나 적는데 눈앞이 너무 흐리더라. 수라는 이름 한 글자인데, 작대기 하나에 10분을 쉬고 또 20분을 쉬었다. 시옷 하나가 이렇게나 어려운 글자인가 봐.
이름 한 번 쓰기도, 부르기도 어려운 수야.
주어진 행복이 질리도록 행복했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