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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쑈나즈씨 Apr 12. 2024

<전쟁과 와인>

- 9가지의 와인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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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낸 샤를마뉴 대제에게 당시 로마 교황은 황제의 관을 씌워주고, 그는 반대급부로 수도원들에 많은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 와인 매니아였기 때문에, 그가 가진 광대한 밭들을 와인생산을 위해 수도원들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부르고뉴의 꼬르동 밭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멋진 하얀 콧수염으로도 유명했는데, 레드와인에 이 수염이 붉게 물드는 것을 싫어했던 그의 네 번째 부인의 성화 때문에 그는 화이트 와인만 마시게 되었고, 이 일화 때문에 그가 기부한 꼬르동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의 이름이 꼬르동 샤를마뉴가 되었습니다.

- 십자군 원정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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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유럽의 와인과 그 생산지들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일화들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의 재산은 왕을 포함하여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치외법권이 되었고, 이에 따라 수도원의 재정 자립이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수도원 자립을 위해 “기도하며 일하라”라는 계율을 만들고 수도원 개혁을 시작한 이탈리아의 베네딕토 수도회가 있었고 이 곳에 소속된 프랑스의 클리뉘 수도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십자군 원정을 창시한 우라바노 2세는 당시 수도원 개혁의 시초가 된 클리뉘 수도원에서 수사로 시작하여 원장을 거쳐 후에 교황에 임명된 인물로서, 클리뉘 수도원과 그의 출신 지역이 부르고뉴 지역 이었고,십자군 원정이 장기화 되면서, 이 원정에 참여한 프랑스의 제후들은 언제든 전사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따라, 전사 시 천국으로 입성할 목적으로 그들이 가진 많은 토지를 부르고뉴 수도원에 기부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부르고뉴는 수도원들을 중심으로 기부받은 넓은 포도밭을 이용하여 프랑스 와인 생산의 중심지로 발전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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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목적외에도 재정자립을 위하여 와인 생산을 강화하던 수도원들과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제후들의 봉토 기부 행위가 맞물리면서 부르고뉴는 프랑스 와인의 가장 중요한 생산지로 떠오르면서, 개혁에 앞장섰던 수도회들도 부를 축적하게 됨에 따라 사치와 부패가 횡행하게 되어, 또 다시 수도원 개혁을 주창하는 시토회가 부르고뉴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짓고 와인을 연구하면서 포도밭의 위치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포도밭의 경계에 돌담을 쌓아 밭을 구분하게 됩니다. 이들이 최초로 “끌로”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설이 있는데, 끌로는 돌담에 싸인 포도밭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부르고뉴 와인중 가장 유명한 본로마네 마을과 샹볼뮈지니 마을의 사이에 수도원을 세운 시토회의 수도원이 부르고뉴 와인의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시토회의 수도원은 부조 마을에 있었고, 이들이 생산했던 와인이 오늘의 “끌로드부조”입니다. ​​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생산, 와인생산 업자들은 타지역과 달리 “도멘”이라 부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수도원들이 소유했던 많은 포도밭들이 일반인들에 의해 잘게 나눠져서 주인이 바뀌게 되면서 수많은 도멘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방법이나 와인을 만드는 방법, 밭과 마을의 위치에 따라 개성이 다른 와인들이 생산되고, 이에 따라 도멘과 마을의 이름이 조합된 다양한 와인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저의 추천 부르고뉴 와인은 도멘 “필립 샤를로팽”의 “끌로드부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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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지역에서는 피노누아 품종으로 레드와인을 만든다면 그보다 남쪽에 위치한 론 지역에서는 시라나 그르나슈(가르나챠)로 레드와인을 만듭니다. 론 지역도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 특징있는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북부의 유명한 지역 두가지가 “에르미타주”와 “코트 로티”입니다. 이들 중 에르미타쥬는 은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기사들 중 살육과 전쟁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며 와인 생산에 몰두한 지역에 에르미타주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전통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르미타주는 Ermitage 또는 Hermitage로 표기하는데, 단어의 시작에 H 철자의 유무에 따라 H가 없는 경우는 싱글빈야드, H 철자가 포함된 경우는 여러밭의 포도가 블랜딩 된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만,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 일부 와이너리도 있습니다.

- 아비뇽 유수와 와인​​


프랑스의 왕 필립4세는 지역의 제후들과 수도원들의 재산에 비해 이름만 왕정이고 재정이 취약한 왕실을 튼튼히 하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남은, 교회에 대한 과세 문제로 필립4세와 교황인 보니파키우스 8세가 대립하게 되는데, 당시 귀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파문을 무기로 교황이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습득한 필립4세는 선공으로 습격하여 교황을 생포하고, 이에 충격받은 교황이 사망하자, 프랑스인 출신의 클레멘트 5세를 새로운 교황으로 임명하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겨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부터 70년간 교황이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무르게 되는 사건이 바로 아비뇽 유수 사건입니다. 교황과의 대립에서 필립4세가 승리를 쟁취하게 되는 과정에서 최초의 삼부회의(귀족+성직자+평민)를 열게 되는데, 힘과 명분이 부족했던 왕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민중들의 힘을 동원하는 첫 사건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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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에 새로이 생긴 교황청에서는 미사의 집전과 다양한 직급의 수도사들이 마시기 위한 많은 양의 와인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부르고뉴와 북부론 지역의 와인을 주로 사용하던 교황청에서 비용과 품질을 문제삼아 와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지대했던 요한22세, 아비뇽 2대 교황이 스페인으로부터 가르나챠 묘목을 공수하여 당시 지역의 주 생산포도였던 시라와 무르베르드에 블랜딩하여 새로 직접 만들어낸 와인을 교황청의 주 사용와인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아비뇽의 북쪽에 위치한 자갈밭에서 미스트랄이라는 매서운 북동풍과 더불어 생산된 포도로 만들어진 이 와인은 교황의 새로운 여름 휴양성 부근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샤토네프뒤파프”라는 이름의 론 남쪽 와인으로 남았습니다. 론 남쪽은 지공다스와 함께 샤토네프뒤파프가 대표적 와인이고, CDP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주 품종이 그르나슈(Granache), 시라(Shyra), 무르베르드(Mourvedre)로 이루어져서 이와 같은 조성으로 만드는 와인들(주로 호주, 뉴질랜드 등)을 GS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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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의 아비뇽 유수가 종식되고 교황청이 로마로 귀환하게 되면서 교황청이 양분되고 결국 3명의 교황이 공존하게 되는 등, 교회의 교황권이 몰락하고 왕권이 강화되는 역사가 이어집니다. 이 귀환 당시, 아비뇽에서 교황을 따르던 귀족 무리들도 함께 로마로 귀향길에 동행하게 되는데 이들 중 일부는 로마로 또 일부는 시에나로 가게 됩니다. 그 무리 중 다른 나머지들이 몬테풀치아노 지역에 남아 와인을 만들게 되는데, 이들이 아비뇽에서 온 사람들이라 “아비뇨네지”라 불리게 되고, 이들이 몬테풀치아노 지역에서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로 생산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와인이 “아비뇨네지 비노 노빌레 몬테풀치아노”입니다. 아비뇽유수의 종식을 의미하는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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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 첫 교황인 클레멘트(끌레망)5세는 프랑스인으로 보르도 페삭레오냑에 포도밭을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이를 기념하여 페삭레오냑의 포도밭을 보르도 지역의 대주교들에게 영구적으로 기증하였고, 이때부터 이 밭의 이름을 샤또빠쁘끌레망으로 교황의 문양을 사용하여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와함께 보르도 페삭레오냑의 대표와인은 누가뭐라해도 샤토 오브리옹입니다. 샤토오브리옹이 가지는 와인 역사의 의미는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샤토라는 보르도 지역 브랜드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와인이며, 수령이 짧아 아직 본 상품으로 사용할 수 없는 포도들을 이용하여 세컨드라벨 와인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와인입니다. 본상품의 가격이 너무 고가라서 자주 접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샤토만의 풍미와 제조 방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세컨드라벨 와인을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시음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만국박람회에 앞서 프랑스가 자국 와인의 부가가치를 향상 시키기 위하여 61개의 그랑크뤼 와인과 이를 1-5등급으로 나누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보르도의 메독 지방에 한하여 행하였던 이때 메독 외 지역에서 유일하게 1등급 그랑크뤼로 선정된 와인이라는 영예를 안게 됩니다. 보르도 1등급 그랑크뤼란, 와린이들도 이름은 들어본 소위 5대 샤토를 이르는 것이며 샤토라피트로칠드, 샤토마고, 샤토라투르 그리고 뒤늦게 1등급에 포함된 샤토무통로칠드와 함께 페삭레오냑의 샤토오브리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비뇽유수를 기억나게 하는 페삭레오냑의 1등급 그랑크뤼 샤토 오브리옹과 클레멘트 5세를 기념한 샤토빠쁘클레망(2등급 그랑크뤼)를 추천 드립니다.

- 백년전쟁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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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4세의 세 아들이 차례로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아무도 후사를 두지 못하고 사망하자 왕위 계승을 놓고, 방계들의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필립4세의 조카이자 필립3세의 손자였던 필립6세와 필립4세의 외손자이자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대결하게 됩니다. 이 왕위를 중심으로 일어난 분쟁의 핵심에 와인이 이슈가 됩니다. 당시 보르도는 영국 왕의 소유로 부르고뉴 와인이 싱겁다고 느끼는 영국인들에게 보르도의 진한 와인은 호응이 좋았고, 영국 왕실의 다른 모든 소득을 합친 것 보다 보르도에서 영국에 수출하는 와인 수익이 더 크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국토가 영국왕의 소유라는 것은 영국왕의 지위가 프랑스왕의 신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필립4세 때부터 왕권과 재정의 강화를 위하여 프랑스 왕실에서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등을 탈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왕권을 놓고 경쟁하던 이시기 에드워드 3세는 원래 프랑스 왕위에 대한 욕심이 처음에는 없었으나, 필립6세의 충성맹세 요구에 보르도 지역의 반환이 포함되자, 영국에 체류중인 프랑스 귀족들과 보르도 지역의 귀족들의 부추김 및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고 왕위 경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격화된 왕위 경쟁이 결국 백년전쟁의 시작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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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은 전통적으로 랭스 대성당(노트르담 성당)에서 주교의 집전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영국의 승승장구로 대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던 샤를7세 앞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찾아온 소녀가 있었는데, 프랑스의 백년전쟁 승리의 주역 잔다르크입니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랭스를 수복한 프랑스는 결국 대성당에서 샤를7세의 대관식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지역은 샴페인을 생산하는 프랑스의 매우 중요한 경제 거점이며 대관식의 의미를 가진 요충지였습니다. 승리의 주역 잔다르크는 이후 전투에서 영국편을 들던 부르고뉴 지역 귀족들에게 생포되고, 대관식과 조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잔다르크는 샤를7세의 부르고뉴와 영국의 연합군에서 요구한 몸값 지불을 거부하는 배신행위에 의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해 죽습니다. 영웅의 속절없고 가치없는 죽음입니다. 자국민들이 기념해주지 않는 영웅의 죽음을 기리며 랭스 대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생산처에서 만들어지는 샴페인인 데탱져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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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보르도의 대지주였던 영국의 딸보 장군은 백년전쟁에서 영국군의 총사령관으로 연전연승하며 기치를 올려갔습니다. 전쟁의 말엽에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참전한 전투에서 패배하며 전사하였습니다. 잔다르크를 앞세워 전쟁에 승리하고 보르도를 되찾은 프랑스 왕실이 세수를 확대하자 이로부터 압력을 느낀 보르도 지역의 주민들이 다시 영국의 치하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딸보장군을 기념하며 만든 생쥴리앙의 샤또 딸보(그랑크뤼 4등급)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최애 와인으로 소개되며 국내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와인입니다. 프랑스의 부르고뉴와 보르도는 백년전쟁 당시 영국편을 들었습니다. 승리의 주역 잔다르크를 기념하는 와인은 없는 반면 적국의 총사령관 딸보장군을 기념하는 와인은 인기 와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듯 합니다만, 국가의 개념이 약했던 당시 무서운 국왕의 수탈보다는 생활이 더 나은 타국왕의 지배를 선호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와인이라는 별것 아닌 유흥을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나 당시 주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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