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가지 와인을 추천함
혼자서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더 좋은 것이 와인입니다. 혼자는 다 마실 수 없는 여러 가지 와인을 테마에 맞춰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와인 파티의 테마는 5월로 잡았습니다. 매번 그달을 테마로 한 와인들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5월을 가지고 얘기를 시작해봅시다.
- 5월은 장미의 계절
먼저 5월은 장미의 계절입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도 아름답지만, 봄이 시작되고 무르익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그 꽃들보다 봄의 절정은 붉은 장미가 피어났을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름 바로 직전 색이 짙어진 붉은 장미의 꽃말에서도 알 수 있듯 5월은 연인들에게는 사랑과 약속의 시작, 모든 다른 이들에게는 정열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사랑과 정열을 위하여 5월의 와인파티는 거부할 수 없는 로제 샴페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로제 샴페인은 블랑드 블랑이나 블랑드 누아와는 만드는 방법이 다릅니다. 물론 샴페인을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은 동일합니다. 효모와 당분이 첨가된 와인병 속에서 2차 발효에 의해 기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병을 뒤집어 놓고 그 병을 6주 동안 계속 빙글빙글 조심해서 돌려주면 부유물과 찌꺼기가 병 입구에 모이는 르뮈아주 단계, 마개를 잠깐 열어 찌꺼기를 내버리고 맑은 와인을 제조하는 데고르주망 단계를 거치는 것은 동일합니다. 다만 블랑드 블랑은 화이트와인의 주재료가 되는 샤도네이와 같은 청포도, 블랑드 누아는 레드와인의 주재료가 되는 피노누아와 같은 적포도로 만드는 반면, 로제 샴페인은 여기에 적포도를 압착해서 나오는 즙을 “블리딩”하는 세니에 방식과 로제와인을 “블렌딩”하는 아셈블라제 방식으로 크게 나누어 차별화 됩니다. 세니에 방식의 로제 와인은 색상을 유지하기 위해 압착시간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등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운 이유로 혹자들은 세니에 로제가 더 고급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5월 와인의 시작은 블랜딩 방식의 로제와인을 최초로 발명했다고 알려진 뵈브 클리코 로제 샴페인을 추천합니다. 뵈브 클리코는 모든 와인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샴페인 브랜드로 미망인 클리코 여사가 남편의 사망 이후 명품으로 빚어낸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입니다. 품질도 좋치만 로제 샴페인계의 가성비는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 5월의 식재료와 마리아주
로제 샴페인으로 입맛을 돋우었으니 출출할 때가 되었고, 이제 5월의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맞춰 보겠습니다. 5월이 제공하는 최고의 식재료 두가지를 꼽는다면 단연 두릅과 장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살짝 데친 두릅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싱그러운 향과 식감은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향이 중요한 요소인 우리나라 나물이나 채소들과는 알콜 도수가 낮고 깔끔하며 싱그러운 맛과 느낌을 주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는데, 소비뇽블랑은 워낙 많이들 마시다보니 오늘은 시원하게 칠링된 이태리의 피노그리지오로부터 싱그러운 봄과 시원한 목넘김 그리고 두릅과의 마리아주를 시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또 든든하게 배를 채워줄 장어는 회나 숯불 구이, 어탕 등 어떤 요리로 해도 맛있는데, 솔직히 장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은 전세계에서 복분자주 만한 것이 없습니다. 봄바다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진안주 장어와 중후한 바디감과 깊은 맛의 복분자는 최고의 마리아주입니다. 양념 잘 바른 장어구이와 고창의 복분자주를 추천합니다.
- 5월의 브람스와 베토벤, 그들이 사랑한 리슬링
와인을 즐기는 동안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인데요, 브람스의 피아노 왈츠 2번을 듣고 있으면 우리 옆에 완연한 봄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5월에 태어난 브람스는 와인을 무지 사랑했던 음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람스는 베토벤과 함께 생을 마감하기 직전, 와인과 관련된 말을 남긴 두명의 음악가 중 한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브람스는 “이 동네 와인은 정말 맛있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바로 이 동네 와인이 라인가우 지방의 뤼데스하임 리슬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연히도 젊은 시절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와인을 더 즐겨 마셨으나 건강이 악화되고 난 후 병원에서 심지어 와인을 처방받아 마시게 된 지경의 베토벤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무렵 주문했던 와인이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 그는 “너무 늦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마침내 도착한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와인이 브람스가 사랑했던 라인가우의 뤼데스하임 리슬링이었다고 하니 위대한 두명의 음악가가 동시에 사랑했고 그 끝은 달랐던 역사를 이번 5월에 함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5월에 초연을 했던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을 기념한 베토벤의 NO.9라는 와인도 있지만 품질면에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그 9번 합창을 한창 작곡하던 시기 베토벤이 즐겨 찾았던 오스트리아 빈의 호이리거 중 아직 남아있는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 와이너리의 햇와인도 경험해보고 싶지만 국내에서 구할 방법이 없으니 이 또한 건너 뛰고 기회가 되면 꼭 시음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 5월의 모짜르트, 두 개의 와인
5월에 초연을 한 또 다른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부파, 피가로의 결혼인데요, 고고하고 딱딱했던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와 달리 낭만주의 시대의 익살스럽고 대중적인 스토리를 가진 모차르트 오페라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하인인 피가로가 결혼하려는 예비 신부를 그의 주인인 백작이 희롱하려다 백작부인과 피가로 커플의 합심으로 망신당하고 백작이 뉘우치며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오페라의 배경은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인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와인이 바로 셰리와인으로 불리는 주정강화 와인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셰리와인의 캐스크로 만든 위스키가 훨씬 유명하지만, 안달루시아의 셰리와인은 포르투갈의 포트와 만드는 방식이 달라 맛도 다른 주정강화 와인의 또 다른 대표선수 입니다.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은 발효중에 높은 도수의 브랜디를 섞어 만들어 단맛이 강하게 나지만 스페인의 셰리는 발효가 끝난 후 브랜디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단맛이 약해, 보통 식전주로 이용하고 별도의 단맛을 첨가한 셰리는 셰리크림이라 부릅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알콜 도수도 높고해서 자주 접하지 않는 주정강화 특히 안달루시아의 셰리와인을 5월의 와인중 하나로 즐겨봅시다.
클래식 음악이 익숙하지 않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의 출처는 잘 모르지만 이미 엄청 유명해진 칠레의 대표 명품와인이 있는데요, 바로 알마비바입니다. 프랑스의 대장 와이너리 중 하나인 샤토 무똥로칠드와 칠레의 진짜 대장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가 협력하여 마이포밸리에서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어낸 강건한 고급와인입니다. 카베르네소비뇽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바디감도 튼튼하여 저도 엄청 좋아하는데요, 알마비바가 5월의 와인중 끝판왕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 와인이 5월의 와인이냐 하면, 와인이름을 5월에 초연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희롱하고 망신당하며 뉘우치는 백작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그가 바로 알마비바백작입니다. 예술과 와인은 이렇게도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네요.
계절과 식재료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5월의 와인을 추천드리며 이 모두를 함께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1.뵈브클리코 로제 브뤼 샴페인
2.피노그리지오 화이트 – 두릅 과 함께
3.셰리와인 – 팔로코르타도 또는 올로로소
4.알마비바
5.복분자주 – 낙지와 함께
6.리슬링 – 라인가우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