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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착각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착각들

by 다니엘

미국에서는 매년 이식이 가능한 건강한 신장 수천 개가 버려진다고 한다. 이식 대기자 명단의 앞 순서에 있는 환자가 어떤 이유로든 기증된 신장을 거부하면, 그다음 순서의 환자는 '앞사람이 거부한 걸 보니 저 신장에 문제가 있나 보다'라고 지레짐작하고 자신도 거부하게 된다. 이렇게 연속적인 거부가 일어나면서 결국 멀쩡한 신장이 폐기되는 비극이 발생한다. 각 개인은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거부한 이유(why)를 정확히 알았다면 그저 불길한 느낌만 갖고 이식을 거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90년대 베트남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리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연구자들은 수소문 끝에 비교적 영양 상태가 좋은 가정들을 조사했다. 그들의 재정 상황이 특별히 더 나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해당 부모들은 베트남 사회의 통상적 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한 덕분에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새우가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고구마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질 낮은 음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쌀 수확량이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대다수 부모들은 외부의 식량 구호가 있을 때에만 아이들을 넉넉하게 먹였다. 그러나 영양상태가 좋았던 아이들의 부모들은 주변의 따가운 인식에도 아이들에게 농사지은 쌀과 함께 새우와 게, 고구마순 등을 먹였던 사람들이었다.


앞선 사례들처럼 우리는 '왜?'라는 질문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질문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름으로써 집단 착각에 빠지곤 한다. 토드 로즈의 '집단 착각'은 이런 인간의 집단 사고 메커니즘을 파헤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출처: 교보문고


왜 우리는 집단착각에 쉽게 빠질까


인간(사피엔스)은 오랜 기간 공동체를 통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건 공동체에서 이단아 또는 별난 사람으로 각인될 수 있는 일이며, 더 나아가 공동체로부터 쫓겨날 위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본능적으로 남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위험'한 일로 여기는 DNA가 있다.


또한 우리의 뇌는 게으르다. 차로 치면 기름 먹는 하마와 같다. 우리의 인지 활동 중 95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는데, 이런 격렬한(?) 활동을 계속하는 탓에 겨우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기관이 신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비한다. 게다가 외국어를 배운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 강도 높은 인지 활동을 할 때는 편안히 TV를 볼 때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소비한다. 사회적 규범이나 대세를 따르는 것은 가뜩이나 피곤한 뇌에게 인지적 부하를 덜어준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하는 세상


김장하 선생이 제자인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만나 던진 첫 화두였다. 당시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일맥상통하는 주제였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집단적 인식 오류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10대들에게는 틱톡커, 유튜버가 곧 연예인이다. 팔로워 수가 곧 권위이자 권력이 된 시대다. 인플루언서의 의견은 그것이 비록 소수 의견일지라도 엄청난 확성기를 지닌 셈이다. 애써 분별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은연중에 잘못된 인식에 동조하거나 그 인식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읽어내는 일에 매우 서툴고, 기술의 발전과 변화로 인해 더욱 간접 정보에 많이 노출되었으며, 그래서 서로를 오해하는 일이 너무도 쉬워졌다. (본문 중)


침묵도 실질적인 해가 될 수 있다


다수의 생각과 다를 것 같다는 생각(때론 나만의 착각)때문에 진정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집단 착각을 방조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퍼져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침묵은 실질적인 해를 끼친다. 그것도 다양한 방면에서 해를 끼친다. 단기적으로 볼 때 침묵의 거짓말은 우리 스스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또한 침묵은 우리가 속한 집단을 새롭고 중요한 정보로부터 차단하며, 어쩌면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부지불식간에 해를 끼치고 있었을지 모르는 기존의 정설을 강화하고 만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침묵은 집단 착각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뿌리 깊은 본능도 침묵에 한몫한다. 바로 사회적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생존의 위협으로 느끼도록 진화해 왔다.


집단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


저자는 책을 통해 집단 착각의 해법을 제시한다. 실질적이지 않거나 다소 나이브하게 들리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공감이 되는 지점이 있다.


이런(집단 착각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단순하지만 예방 효과까지 있는 방법이 있다. 정체성의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여야 한다.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인다는 건 개인이 다양한 집단에 속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의 집단에만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부분에 동의한다. '건강한 조직은 다양성이 있는 조직'이라는 평소 생각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지금의 시대는 더 이상 정보 자체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정보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가장 쉬운 것이 바로 메신저를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이 주는 정보에 더 큰 신뢰점수를 준다. 그러나 이때에도 메신저가 말하는 것이 실제 전문성을 가진 영역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즉시적인 판단이나 리액션을 잠시 보류하고, 스스로 소화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삶의 궤적 곳곳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란 생각으로 침묵했거나 가벼운 동조를 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책은 완전히 모르는 지식을 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과거나 현재를 반추하며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좋은 수단이기에, 역시 집단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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