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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란 뭘까

이십 년 된 파커 샤프

by 다니엘

초등학생 아들은 몇 년째 똑같은 샤프를 고집한다.


새로운 샤프를 사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그 샤프가 가장 익숙하고 잘 써진다고 한다. 위쪽은 은색, 아래쪽은 버건디 색을 띤 이 파커(Parker) 샤프는 사실 아내가 학창 시절부터 쓰던 샤프다. 본인이 공부했던 샤프를 아이에게 물려준 것이다.


공부를 잘했던 아내가 쓰던 샤프이니 이걸 쓰면 공부를 곧잘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본다. 녀석도 같은 생각인지, 이걸 쓰면 왠지 문제를 더 잘 풀 것 같단다.


이십 년도 족히 된 샤프가 고장 한 번 없이, 엄마에서 아들로 물려져 쓰인다는 게 놀랍다. 그러면서 진정한 명품(名品)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사놓고 아까워서 못 쓰는 거 말고, 저절로 손이 가고 당연하게 쓰는 것. 세대가 달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개인의 역사가 세월의 흔적으로 담기며 의미가 커지는 물건. 그런 게 명품 아닐까. 마치 이 샤프처럼.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손글씨를 더 쓰려고 노트와 펜을 사기 위해서다. 어떤 노트를 살지는 고민을 좀 했지만, 어떤 펜을 살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곧장 파커 펜이 있는 매장으로 향했고 파커의 조터(Jotter) 펜을 집어 들었다. 위쪽은 은색, 아래쪽은 검은색인 기본 펜이었다. 상단의 버튼을 눌렀을 때 나는 특유의 ‘딸깍’ 소리가 반갑다.


옛날 모델은 할인을 해주어 2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펜이 다 닳더라도 14,000원 주고 펜심만 교체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언젠가 아들이 샤프보다 펜을 더 많이 쓸 나이가 되면 이 펜을 쓰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명품 구매할 때 다들 이런 비슷한 핑계를 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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