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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하는가

불연성 인간에 대한 일침

by 다니엘
“가연성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야만 행동하고, 불연성 인간은 좀처럼 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씨까지 꺼버린다. 이에 반해 자연성 인간은 스스로 타올라 행동으로 옮긴다.”


교세라를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의 책 <왜 일하는가>에서 일에 대한 자세를 불에 연소되는 것과 비유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소위 덕업일치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정을 쏟아부으며 일하는 자연성 인간인 셈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저자 역시 그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부터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음... 결혼했으니 사랑하라 뭐 이런 건가. 언뜻 당연하게 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구시대적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조언을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파이어족 그리고 조기 은퇴


책을 읽으며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파이어족이 떠올랐다. 파이어족은 부수입과 재테크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조기 은퇴를 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게 일하기 싫어서일까? 그 이면에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말고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은퇴자가 되면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나 역시 돌아보면 직장에서 힘든 건 일 자체가 아니었다.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부서 이기주의, 동기들간의 은근한 비교, 과도한 술자리, 눈치로 포장된 의전이나 아부 등 일 주변의 것이 컸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작은 일에도 주도권을 갖고 몰입할 때였다. 파이어의 확산은 어쩌면 권한위임과 몰입의 환경을 만들지 못한 리더들로부터 비롯되었을 확률이 높다. 역설적이게도 경제적 자유가 생기면 남들에게 잘보이려는 노력을 굳이 안하게 된다. 일과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은퇴를 안하고 싶어진다.


Combat! Combat! Combat!


얼마 전 본 <F1 더무비>의 한 장면이 스친다. 주인공 브래드 피트(소니 헤이즈역)가 "Plan C is for Combat."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하위팀이 상위팀을 상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투를 하듯 치열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팀은 함께 "Combat"을 외치며 전투를 앞둔 군인들마냥 사기를 올린다.


내가 하는 일은 어디에서 왔는가? 비즈니스 역시 생존을 위한 전투(Combat)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내게 맡겨진 일 역시 전투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레이싱 중 정비를 위해 피트인(Pit-in)을 하면 수많은 인력이 자신이 맡은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한다. 작은 부분에 대한 전문성이 모여 결국 최종 순위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처럼 내 일을 비즈니스 전체 관점에서 본다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기왕 할 거라면 치열한 편이 낫다


딱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자세는 성장에 불리하다. 어떤 일이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학습하고 단련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치열함은 내면의 성장을 꽃피운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나 기회가 보인다. 세상에 대한 관점뿐 아니라 나에 대한 타인의 인식도 바꾸게 되고 그것이 또다른 기회로 연결되기도 한다. 저자가 현재의 일부터 최선을 다하라고 했던 것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기왕이면 지금 주어진 일부터 치열하게 하는 편이 낫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치열함이 빚어낼 결과다.


왜 일하는가


일은 우리에게 희로애락이라는 끊임없는 감정의 파고를 허락하고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를 준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 줄 알았는데 역설적으로 일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것보다 일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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